문제는 명박 때문만이 아니다. 실천

사실, 이게 다 노무현 탓, 이게 다 이명박 탓이라는 말 뒤에는 무서운 전제가 하나 깔려 있다. '대통령=경제를 살리는 주체=선거를 통해 선출된 합법적인 나랏님' 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이 나라 국민들이 무섭다. 대통령이란 명목상 행정수반의 대표 노릇을 하는 사람이지, 주권의 꼭대기에 서서 국민들을 통치해주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물론 헌법상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다른 어느 나라들에 비해서도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남북 대치상황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 및 그간 거쳐왔던 독재정권들의 잔재들과 맞물려 있음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국민들이 대통령을 농담 삼아서라도 나랏님이라고 부르고, 자신들은 표 하나 띡 던져 놓은 채 모든 것을 그가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이상, 이 나라의 민주주의에 미래는 없다.

경제를 살리는 주체는 대통령이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정당 및 의회에서 의석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당의 정책적 신념과 기조가 되어야 하며, 보다 실질적으로는 재경부 장관이나 재경부 소속 고위 관료들에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혹은 강력한 국정 쇄신 의지 하나만으로 정책의 기조 자체를 뿌리채 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너무나도 높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예전에 의료보험 정책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런 논문을 썼던 적이 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한국의 의료보험제도 변천과정에 있어 가장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관료도, 국회의원도, 다수당도 아닌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보험제도의 등장 자체가 박정희라는 한 사람의 일방적인 명령에 의하여 일본에서 당시 시행되고 있었던 법률 조항들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번역해서 가지고 오면서 비롯되었고, 이후 국회에서 여당, 야당 의원 모두가 찬성하여 발의한 의료보험법 수정요구안을 노태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한 방으로 간단히 날려버린 선례가 있을 만큼 대통령의 권한은 절대적이었다. 이와 같은 시스템적인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로 백날 명박타도! 정권교체! 따위를 외쳐 봐야 해결될 것은 하나도 없다. 누가 올라가서 정치를 하든, 제대로 된 삼권 분립과 해당 분야의 전문가적 지식을 갖춘 관료들에 의한 국정 정책들의 엄밀한 검토, 각 국가 부처들의 명확한 업무 집행과 상호 견제 체제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병폐는 끊이지 않고 계속 될 것이다. 한때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대통령의 위치에 올라가 이를 바꾸려고 시도해 보기도 하였으나, 소용 없는 일이었다. 정치권과 기업 사이의 커넥션, 대통령에게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는 불법 선거 자금들과 뇌물들 같은 치명적인 유혹을 끊어낼만한 구조적인 장치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무현 한 사람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감당해내기는 벅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정태와 같은 사람들이 깨끗한 선거 자금 마련을 위한 정당정치를 꿈꾸고, 지금도 많은 좌파들이 시국에 한탄하며 어떻게든 무비판적인 비난이 아닌 대안이 있는 비판을 찾아 내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국민의 인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국민들 스스로가 대통령을 당연히 내 호주머니나 두둑하게 만들어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주체로 인식하고 있는 이상,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하였다면 그가 권력을 남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묵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상, 지금의 불합리한 구조들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명박이 독재자라고 말하려고 하거나 그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식의 담론을 설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가 현재 합법성의 힘을 빌려 하고 있는 온갖 불합리한 행위들에 대하여 끊임 없이 문제 제기를 하고, 우리들의 손으로 뽑아준 국회의원들을 압박하여 명박의 무소불위의 권한을 적절히 제어할 만한 법안들이 국회에서 계속 논의되고 가능하다면 통과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분노와 증오의 초점은 명박이라는 한 상징적인 존재에만 맞춰져서는 안된다. 대통령으로서의 '그'가 지금과 같은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용인해준 구조와 그것이 가지는 무시무시한 파괴성에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보았다! 그러한 구조는 결코 한 사람의 힘에 의해 바뀌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노무현이라는 존재의 죽음은 내가 다른 글에서도 누차 언급한 바 있다시피, 한국이라는 거대하게 뒤틀린 사회 구조와 개인이 맞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숙명론적 비극이었다. 그의 유지를 이어 받는 방법은 민주당 따위에게 표를 몰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하고자 했던 '불합리한 구조'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이를 수정하기 위한 메스를, 다름 아닌 우리들의 손으로 단호하게 들이대는 것이다.

칼 맑스는 그의 역작 '브뤼메르의 18일'에서 '죽은 모든 세대들의 전통이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자들의 머리를 짓누른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지금의 상황이야 말로 '죽은 모든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악법과 구조적 모순들이 현실을 짓누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블로그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는 시위의 합법성을 운운하는 움직임이라든가, 시장의 권한을 교묘하게 이용한 '시청 광장 폐쇄'에 대한 논의들과 같은 모든 것들이 실은 우리들로 하여금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률들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시발점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 보여지고 있는 논쟁들은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은 법률 혹은 규칙들에 대한 막무가내 식의 한탄, 혹은 그러한 법률을 기초로 해서 시위대의 행위 혹은 전경의 행위들을 무조건 불법 또는 합법으로 몰아가고 있는 단순한 것들 뿐이라서 안타깝다. 애초에 이런 법률들은 누구의 의지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 국민은 어째서 이에 대해 침묵하고 일방적으로 복종할 것을 강요당해야만 하는가. 국회 문 걸어잠그고 지들끼리 망치를 땅땅땅 두들겨서 통과시킨 법률들에 대한 의문의 제기는 다름 아닌 국민들 스스로의 입에서부터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원치 않는 법이 통과되어 당신의 삶을 괴롭히고 있다면, 당신이 투표하여 선출한 대표를 향하여 두번 다시 그따위로 정치 했다가는 너희들 쫓겨날 줄 알아! 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혹시 그동안 너무 많은 정치권의 부패 소식을 접하며 아예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로 돌아서거나, 원래 정치란 게 다 그런 거지 뭐, 라면서 체념하고 침묵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마지 못해 대표라는 거 하나 뽑아놓고, 그들이 내 동네, 내 나라를 어떻게 통치하는지는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 자신의 삶에 매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언론이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는다면 찾아내서라도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끊임 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귀찮은데 언제 해!'가 아니고, 이건 대의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자신의 권력을 국회의원 혹은 대통령이라는 대표자에게 위임해 준 국민이 가져야 할 마땅한 의무이자 권리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요즘과 같은 세상에서는 클릭 하나로도 지금 국회에서 어떤 법률들이 통과되고 있고, 어떤 법률들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지 한 눈에 파악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에게 압박을 가했다면 지금과 같은 비극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도 모른다.

하다 못해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데 있어서도 그가 제시하는 정책이나 비전을 보고 투표하기 보다는 그가 얼마나 '내 이익에 충실하게 봉사하는지', '어느 당 소속이며 어느 동네 출신인지', '얼마나 인물이 훤칠한지'를 보고 뽑는 마당에 정책 감시까지 하라고 요구하는건, 어쩌면 현실 감각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하지 않았나. 전라도당, 경상도당 운운하면서 무조건 자기 동네 사람 찍어 주던 현실도 여전히 건재할 지언정 전보다는 많이 개선되고 있고, 의식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늘어가는 마당에 정책 하나 확인하는 게,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법안 몇 개 확인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덧붙여 대통령을 나랏님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상징적으로도, 그리고 실질적으로도!)을 가능하게 하려면, 현재 그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법률들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어떤 법률들에 대하여 법률안 제출권을 행사했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그람시의 말 맞다나 철저하게 진지전에 임하는 각오로, 왜 그렇게 해야만 하며 어떻게 하면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는지에 대하여 철저한 교육과 설득이 이루어져야 하고, 정신적인 무장 역시도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현 교육구조가 이를 불가능하게 막고 있다는 데에 있겠지만.

사실 까기 시작하면 결국은 교육이라는 주제로 환원되어 버리는 게, 지금과 같은 수능 위주의 정답 찍기 훈련, 달달달 외우게만 시키는 교육 방식과 학교 내에 잔존하는 권위주의, 집단적 통제와 억압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기껏 우리들이 머리 굴려 생각해 놓은 이러한 대안들이 한 세대도 거치지 못하고 매몰되어버릴 위험성이 다분히 존재한다. 그래도 내가 이 나라에서 희망을 놓지 않고 위와 같은 생각들을 끄적이게 되는 것은, 뒤늦게나마 교육감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방식으로 제도가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비록 소수일 지언정 일선에서 나와 같은 문제제기를 끊임 없이 하고 있는 선생들 및 학부모들이 건재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의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술대에서 행해지는 작업들이 이명박이라는 하나의 개체로 집결되어 분노하듯 터져버리는 대신에, 사회 전반에 걸친 부조리들을 향하여 퍼져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명박이라는 존재를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기기는 하여도, 지금과 같이 한 사람을 향한 증오 일색의 분위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감히 선언해본다. 부디 대통령이 나랏님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취급 받으며 직무나 빡시게 대행하는 시대가 언젠가는 도래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가 죽기 전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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