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새, 그리고 나 Identity

호반새 [湖畔─, ruddy kingfisher]



학명 : Halcyon coromanda
분류 : 파랑새목 물총새과
크기 : 몸길이 약 27.5cm
색 : 붉은색(윗면), 오렌지색(아랫면)
생식 : 난생(1회에 5~6개)
서식장소 : 산간 계곡이나 호숫가의 우거진 숲속 나무구멍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동북부)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호반새 [blushbird]


학명 : Senior student of Major in Sociology, Undergraduate School of Social Science
분류 : 대학생목 사회학과
크기 : 몸길이 약 150cm
색 : 약간 까무잡잡. 전형적인 황인종.
생식 : 포유류, 여성, 이성애자
서식장소 : 자기 방(...)
분포지역 : 신촌, 연희관, 중앙도서관 등.
잘 먹는 음식 : 쌀국수, 샤브샤브, 돈부리, 간장맛 치킨, 훈제연어, 왕소금을 뿌려 구운 대하
못 먹는 음식 : 풀뿌리(가지, 미나리, 쑥 등등), 미더덕, 개불
잘 마시는 음료 : 원두커피!
못 마시는 음료 : 술(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만 마셔도 취한다)
성격 : 더러움, 까칠함
혈액형 : B 형
별자리 : 처녀자리
관심사 : 사회학(사회 사상, 사회학 이론, 사회 정책, 고전 사회학, 계급-계층이론, 구조주의), 심리학(정신분석학-프로이드, 칼 융), 문학(특히 영미 낭만주의 사조), 언어학(노엄 촘스키와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 특히 관심이 많음), 문화 인류학(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 관심이 많음), 시사 일반, 게임(고전게임, 콘솔게임 중심으로-온라인 게임은 별로 좋아하지 않음)
이상형 : 물고기자리의 눈이 아름답고 다정 다감한 상대(최소한의 지적 수준은 갖추고 있으며 상대를 기만하지 않고, 마초적이지 않은 사람. 나와 말이 통하는 상대)
<출처 : 내 머릿 속>

혹시라도 호반새라는 종의 학명을 blushbird 로 착각하고 계신 분이 있을까봐 여기에 밝혀 본다. 사실 blushbird 라는 이름은 ruddy kingfisher 라는 호반새의 영어 명칭이 마음에 들지 않아 blush(다홍색, 노을색, 얼굴을 붉히다) + bird(새) 라는 영어 단어 조합을 통해 임의로 만들어 낸 이름이다.

사실 호반새는 한 종류가 아니며, 청호반새라고 해서 이녀석과 똑같이 생겼는데 색깔만 다른 종류도 있다.


<출처 : http://www.slrclup.net/TwoBox, 호반새로 검색>

그렇지만 나는 메인 사진으로 걸어 놓은 붉은색의 녀석을 훨씬 더 좋아한다.

사실 수많은 새들 중에서 이 호반새라는 녀석을 고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집에 '날아라 새들아(다른 세상,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원병오 지음)' 이라는 한국에 서식하는 새들에 대한 백과사전같은 책이 있는데, 그 책을 우연히 넘기다 발견한 것이 이 녀석의 사진이었다. 나는 이 빨갛고 이국적으로 생긴 새가 무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새 중 하나라는데 놀랐고, 땡글땡글한 눈이며 고집 세 보이는 두꺼운 부리가 참 마음에 들었다. 더군다나 책에 의하면 이 녀석은 '사람의 손길이 한번이라도 닿으면 둥지를 떠나버리기 때문에 생태에 관한 조사가 어렵고 아직 많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p.98).

전부 시커머죽죽한 새들만 사는 한국에서 유난히도 빨갛게 빛나는 새, 고집스럽게 두툼한 부리를 꽉 다물고, 조금이라도 남의 손을 타면 곧잘 떠나버리는 방랑객이라는 이미지가 마음 깊이 와 닿았다. 이 녀석의 모습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언제나 외로워하며 단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사상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방인 취급 받고 있는 나와 여러가지로 닮았다고 느꼈달까. 그래서인지 많은 애착이 갔고, 결국은 이 새를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마스코트로 삼아버리고 만 것이다.

가운데 사진은 이 녀석을 모티브로 해서 그린 나의 캐릭터이며, 원래는 저렇게 민숭민숭한 머리가 아니라 머리카락이 몇 가닥 삐쳐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리기 편하게 만들다보니 저렇게 굳어지고 말았다. 뒤에 달려 있는 등껍질은 내가 늘상 매고 다니는 백팩(=커다란 배낭의 일종)을 의미하는데, 방향치라서 길을 잘 찾을 수 있게끔 세틀라이트 안테나를 설치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사실 나는 저렇게 날렵한 새와는 거리가 멀 정도로 운동 신경이 둔하고, 배가 나왔고, 만사태평에 때로는 심술궃기도 하고, 쌀쌀맞은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그래도 마음 만큼은 언제나 창공을 향하여 힘찬 날개짓을 하는 새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제 이 녀석은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상징물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글루 관리 코너로 들어가서 리퍼러(=방문객들 및 이 사이트로 들어온 사람들이 거쳐간 인터넷 주소)를 확인해보면 매일 한두 명 정도 '호반새' 라는 이름으로 검색해서 이 곳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존재하던데, 그들에게도 미흡하게나마 답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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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8/20 20:13 # 삭제 답글

    오호, 그런 뜻이 있었군요. 그런데 호반새는 왠지 힘찬 날개짓을 못할 것 처럼 생겼어요.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마치 뒷짐지고 뚱하게 바라보는 표정인지라 ㅎㅎ
    그나저나 닉에 무언가 뜻이 있어야 할텐데, 코는 제가 좋아서 붙인게 아니라 그냥 불리다 보니 붙여진 이름이라 뭐 엮어보려 해도 만들어낼 뜻이 없네요;;;
  • 호반새 2009/08/21 09:06 #

    그 뚱한 표정이 너무 좋다능. 만약 제가 새였다면, 운동신경 꽝에다가 배가 약간 나온 바람에 간지나게! 날아다니기 보다 앉아서 투덜거리며 다른 새들 나는거 관망이나 하고 있을 거 같네효. 그렇지만 글은 엣지있게! (...야!) 아니 왜 님하의 이름에 뜻이 없나요. 간지 작살 멀리서 봐도 우월한 옆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
  • 라이 2009/08/20 21:43 # 답글

    호반새(호반새님이 아닌 리얼 호반새)는 아웃사이더 느낌이 강하게 묻어나요.
  • 호반새 2009/08/21 09:07 #

    사실 그래서 더 좋아합니다. 제 성격이 상당히 아싸스러운 부분이 있고, 친해지는 속도가 더뎌서요.
  • 아미 2009/08/21 22:22 # 삭제 답글

    자기 정체성을 언어로 나타내고나면 나타낸 만큼 자기의 가능성이 자기가 사용한 언어의 틀 안에서 제약되고 말지요. 누군가 푸코를 향해 당신의 학자로서의 정체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으니 그가 내 정체성을 내가 알 필요가 있나요? 라고 대답했던 게 생각나는군요.
  • 호반새 2009/08/21 22:44 #

    자기 캐릭터 하나 갖는 것쯤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의 제약 역시 어떠한 기표를 목표로 두는가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아미 2009/08/21 23:22 # 삭제

    정체성 같은 걸 나타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화시키게 되어요. 이를테면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해 나가는 타인이라는 형상을 마치 내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거나.

    나를 어떤 식으로든 정의하고 나면, 나의 정의에 내가 묶여 빠져나올 수 없게 될 수도 있어요. 난 ~과니까, 난 ~사람이니까, 라는 식으로 내 정체성에 기대어 행동하다보면, 내가 사실은 그런 행동을 원했는지 아니면 내가 내 정체성을 그렇게 정해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죠.

    호반새님이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든 찾아서 그것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나가려고 하는 건, 이 블로그의 다른 포스팅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지만, 내가 나를 그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야기한 것이 되려 나를 이야기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한 번 쯤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 호반새 2009/08/21 23:49 #

    정말 좋은 이야기이네요. 마지막 문장이 깊이 와닿습니다. 내가 나를 그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야기 한 것이 되려 나를 구속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 대해서, 가급적 의식화 하도록 노력하고 성찰의 토대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언급하신대로 자신을 규정짓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게 그 규정의 틀에 갖혀 자기 자신을 속박하고 특정한 방향의 편협된 형태로 해석하게 할 개제가 분명히 있습니다. 명언 감사드립니다.
  • 아미 2009/08/22 00:42 # 삭제 답글

    주제 넘는 이야기인 것 같긴 하지만, 감히 몇 마디 더 해보자면, 호반새님은 위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정체성을 가급적이면 빠르게 가지고 그 정체성을 칼과 방패 삼아 세상을 살아나가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마 주위에서 호반새님이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인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요.

    자신을 자주 고유명사가 아닌 대명사를 사용해서 지칭하시는 글을 자주 읽을 수 있는데, 물론 계급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그 계급의 일원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어쩔 수 없이 대명사로 지칭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런 표현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무의식적으로 정립해나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융통성 없이 그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느라 호반새님이 그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상대방이 자기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런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전체주의적인, 폭력적인 이념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잖아요. 제가 호반새님이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알 수 없으긴 하지만, 블로그의 올리신 적잖은 글을 통해 드러난 호반새님은 그 사람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님에도 그들을 호반새님이 갈고 닦고 계신 정체성이라는 이름의 칼과 방패를 들이대어 그들을 처단하고자 하시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거기에 원인이 있다면 호반새님을 힘들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 반작용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정체성을 갈구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이 아주 조금일지는 몰라도 짐작이 가긴 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비판을 받아들이실 수 있으신 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도, 불의를 보고 지나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랍니다.

    너무 주제넘게 아는 척 했다면 사과드립니다.
  • 호반새 2009/08/22 13:33 #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사실 어떤 지점에서 합의를 보면 좋을지 여전히 감이 안 잡히는 부분이긴 합니다. 저는 계급 의식을 명확히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고, 그게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 옳고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건 또 아닙니다. 애매한 스텐스. 저는 님 의견에 반은 동의하지만 반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체성은 어떤 면에서 자신의 색체를 확실히 하고 연구의 기조를 잡는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물론 지나치게 특정한 정체성에 얽매여 자신과 타자를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규정하는 시선을 가지는 것은 위험한 태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체성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과연 진실한 답이 될 수 있습니까? 이미 경험을 통해 물들어버린 색들을 희미하게는 할 수 있을 지언정 순백의 상태로 되돌리게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지요? 또한, 한 사람의 삶이라는건 글을 통해 그렇게 단편적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덧글만으로 님이란 존재를 온전히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고, 정신분석학적으로 그런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그만큼의 열등감과 피해 의식이 많다는 이야기로 해석되어질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강하고 자신을 강한 어조로 규정지으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의 경험적 충격들을 연속적으록 거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들에 국한되어 사물을 지나치게 곡해해서 바라볼 가능성이 클 수 있다는 것 역시 합당한 비판의 지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태도 역시 제 삶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며, 나의 퍼스널리티의 일부를 형성하고 타자들과 대립하거나 섞이는 과정에서 조금씩 이상적인 모습을 탈피하여 현실 속으로 안착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일은 정체성 그 자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은 유지하되 자기 자신에 대하여 비판의 날을 세우고 항상 긴장하며 사실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정체성이란 걸 전혀 규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한 견지에서 저는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류의 지적 놀음이나 주디스 버틀러의 사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융통성과 관련된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공감합니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전에는 돈 많고 부유한 친구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괜히 심사가 뒤틀리고 좋겠다 너는 자본가의 자식이라서, 라는 식으로 비아냥대는 태도를 가졌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대부분의 명제들에 대해서 단편적으로만 옳고 그름을 따져 구별해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군요. 이런 편협한 태도들을 내면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외면으로 드러낸 덕분에 무던히도 다른 사람들과 충돌하는 과정을 겪었고, 그 결과 많은 부분에서 배우며 사전적인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융통성과 이해의 깊이를 체득하게 된 적도 많았으니 말입니다. 애초에 이런 편견 자체를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사람들과 마주할 일도 없었을테고, 딱히 지적받거나 대립하지도 않았을 테지요. 하지만 말을 하고 내보였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비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태도를 확실히 했기 때문에요.

    세상 그 누가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않고 현상과 사물들을 바라볼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완벽하게 중립적인 사람이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기만입니다. 편견은 누구에게나 내재하고 있지만, 다만 드러냄과 드러내지 않음의 차이에 의하여 어떤 수준에서 적절히 제어할 수 있을지가 결정될 수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 정체성은 편견을 드러내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제가 사회학을 하게 된 이유는 맑시즘과 계급이론 때문이었고, 그러한 이론들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사회 비판적 가치들에도 불구하고 전체주의적, 폭력적 이념을 내포할 개재가 다분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들은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만약 제가 아예 맑시즘에 영향을 받은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무미건조하게 중립적인 어투로 모든 것을 서술하고 묘사하고자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듣기 싫은 비판들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저 자신은 오히려 내면적으로 더욱 깊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맑시즘에서 폭력성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을 빼 버리면 그만일 따름입니다. 교조적인 태도가 문제가 된다면 후대의 연구자로서 기본 전제들만 받아들이며 불필요한 부분은 현대에 맞게 수정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스텐스를 분명해 해서 보다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저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식론적 기본 전제들-맑시즘이나 특정 사상의 틀 그 자체를 버려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프레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다루려 하고 다른 사상들에 대해서도 존재 가능성을 인정하며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누군가가 특정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폭력이며 전체주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험은 이성보다 사람을 강하게 지배합니다. 그것만이 옳고 진리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에게는 분명히 머리로는 이해하되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이란 게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이를테면 정체성이나 편견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로만 이해하고 가슴으로 그것을 부정한다면 차라리 대놓고 편견을 과시하느니만 못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애초에 상처를 통해 개인의 성격 속에 깊이 내재하게 된 속성들에 대하여 애써 부인하며 없다고 정의내리는 것보다 차라리 인정한 후에 그것을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고쳐나가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일 수 있지 않을까요?

    푸코의 말 맞다나 모든 현상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서술하는 '담론화'의 과정에서부터 발견되고 포착되어지며 막연히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개념화가 이루어 질 수 있게 되는 순간 제도적으로 포섭되어 통제가능한 현상으로 탈바꿈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저 자신을 작은 세계에 비유하자면, 스스로에 대한 개념화와 정체성의 확립은 이러한 '담론화'의 수준에서 나 자신도 모르는 내 안의 편견들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정의내리고 적절히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재배치하는 유용한 틀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저는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적어도 저 자신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 중에 하나라고 믿습니다.

    애석하게도 저는 님이 바라는만큼 완벽하게 편견을 척결할만한 그릇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특정한 단어를 통해 자신을 규정짓고 시각화 하는 과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당당히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며 내려 놓으려 노력하는 태도야말로 그것을 완전히 없애지 못해 안달하는 편집증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건전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두서 없이 길어지긴 했는데, 이걸로 충분한 답변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
  • 아미 2009/08/22 15:17 # 삭제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호반새님의 입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납득했습니다. 다만 제가 지적하는 것은, 아마 그런 쪽으로 사유하는 데에 익숙해진 것이 지금의 호반새님을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만, 누군가의 행위가 담고 있는 사회적인 맥락을 읽어내기 이전에, 그 사람은 그저, 라깡의 말마따나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사건,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정체성을 정립하고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면 그만큼 강해질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그러니까 그게 상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특정한 이론적인 토대와 자신의 경험을 대변하고 있는 것 뿐인지 알 수 없게 되고 말겁니다(아마 후자의 경우에 가깝게 되겠지만요).

    요컨대 상대를 마주하는 데에 있어서 자신의 이론적 토대와 경험만을 사용함으로 인해, 결국은 상대가 나와 마주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를 하지 않게 되죠. 포스트 모던식의 이야기를 단순히 지적 유희로 취급하시는 건, 물론 포스트 모던 담론들이(포스트 모던 사상가들의 사상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을 통해 형성된 담론들이), 다소 생산성이 없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지만, 상대와의 마주함을 통해 자신을 형성해나가는, 그러니까 나는 나로서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상대도 상대로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상호주관성을 중시하는 이야기들은 충분히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내가 그렇게 보기 때문에 상대는 그런 존재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고, 내가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상대는 그런 식으로 다가오진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지적하는 것은, 호반새님이 겪으신 많은 안 좋은 기억들(트라우마라고 부를 수 있는)과 상대의 행위를 결부시켜 생각하고 있는 것을 과연 알고 계신가 하는 점입니다. 자신이 그 기억을 불러왔기 때문에 상대는 그 기억과 결부되어 기분 나쁜 존재로 나에게 나타나는 것이고, 그 기억을 불러오지 않았다면 상대는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인 것이지요.

    제가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바는 다름이 아니라, 자기의 정체성이 마치 상대와의 마주함 없이 그저 마치 그 자리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것은,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결과적으로 자기의 가능성을 제약하고, 상대와의 소통과정 없이 이미 형성해두고 있는 나를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리 많은 책을 읽어본 것도 아니라 확고하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학은 인간의 주관과 감성의 영역에서 별개로 작동하고 있는 사회라는 개별적 실체에 대해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러한 사회학적 방법론을 통해 개별적인 인간의 주관과 감성의 영역을 따로 놓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쪽으로 사유하는 것이 익숙하시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주관과 감성의 영역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하시려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호반새 2009/08/22 17:25 #

    상호주관성을 존중하자는 의견 자체에 대해서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 스승들 중에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분들도 꽤 됩니다. 저 자신이 포스트 모더니즘 학자들의 이론들에 대하여 그렇게까지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는 것일 뿐, 그것들 자체를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 봅니다. 제가 제 안좋은 기억들과 상대의 행위를 어떻게 결부시켜서 생각하고 있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다만 이런 상황들은 가능할 겁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자기 과거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킬만한 상대를 만났을 경우 본능적으로 방어의 테세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이요.

    저는 정체성이 아예 사라질 수는 없다고 말씀을 드렸지, 정체성이 처음부터 형성된 것이며 변할 수 없다고 이야기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사실 민족주의이며 사회적으로 규정되어있는 온갖 정체성들부터 논하고 그것들을 일방적으로 수호하려고 들지 않았을까요? 혹은 아예 덧글창을 막아버렸겠지요. 처음부터 혼자 중얼거리고 싶었던 것일 뿐, 타인의 의견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테니 말입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타자에게 내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과 타자와 내가 친해지는 과정에서 내 정체성을 '이해받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습니다. 저는 제 글을 통해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 타인에 의하여 규정지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그만큼 저 자신도 타인을 규정하는 것을 싫어하고, 타인에게 제 생각을 강요하는 것 역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묻고 싶군요. 님이야말로 지금 제 글과 몇몇 덧글을 통해 나타나는 태도를 가지고 일방적인 평가를 내리고 제 태도를 바꾸려 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블로그에 개재된 글들에는 당연히 자신의 주관이 강하게 묻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일단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늘어 놓는 '주장문' 또는 '생각의 덩어리'이니까 말입니다. 그 아래 글을 읽었다는 전제 하에 덧글들이 달리면서 생각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소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대화는 범위가 한정되기 시작하는데, 특정한 글과 주장들에 대해서 1)충분히 숙지했다고 전제하며, 2)그 글이 지시하고자 하는 바에서 멀어지지 않으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의 제약이란 말을 떠나서, 저 자신이 생각하는 저와 타자가 생각하는 저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가 생각하는 나를 염두에 두고 나 자신이 생각하는 나를 묘사하고자 하는 것이, 그리도 가당치 않게 보이든가요? 저 글을 통해 묘사되고 있는 제 모습이, 타자에게 무엇을 강요하는듯이 느껴진다는 것은 님만의 고유한 해석 아닙니까?

    저는 주관과 감성의 영역을 현상이나 이론과 함께 섞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이론이 그냥 이론으로 머물지 않고 내 삶과 내 감정들과 얽히면서 어떤 식으로 경험을 통해 해석되어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설령 저렇게 글을 써도 남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 이미지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을 바꾸고자 함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글을 씁니다. 그것을 가지고 비판하기 시작하시면, 곤란합니다.

    가령 이런 예를 들어보지요. 제가 한국 사람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글을 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글이 한국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내 생각을 강요하는 글이라고 단정지을 권한이 님께 있습니까? 저는 글을 통해 제 생각을 표현하지만, 그것은 이 장소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뿐,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특정 현상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모두를 다 그렇게 만들겠다는 생각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가령 제 친구들 중에서는 제가 글에서 비판한 바 있는 여성 마초형 인간들도 있고, 결혼식을 여는 것이나 명품 가방을 사는 것 등등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저같은 방식을 따라야만 한다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강요를 하는 건 오히려 그들 쪽이지요. 제 말은 이런 겁니다. 내 경험과 정체성만이 옳고 내 세계만 옳다는 것이 아니라, 남과 내가 다를 때, 남의 다름과 함께 나의 다름도 인정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어떠한 인간이든 3 차원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게 제 입장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나, 타자가 바라보는 나, 그리고 절대적인 존재로서 어디엔가 형성되어있을지 모를 나의 실체라는 것. 정체성이란 당연히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긴밀히 상호작용하며 형성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세 번째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말이지요. 차원을 분명히 하였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사회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도 오해를 하고 계신 모양인데, 그 어느 사회학자도 인간의 주관과 감성의 영역으로부터 별개로 작동하는 사회라는 개별적 실체를 다루는 것을 사회학이라고 그렇게 명료하게 정의내리지는 않습니다. 님이 이야기하신 수준에서 사회를 다루기 시작하면 도리어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무의미한 작업이 됩니다. 결국은 기저에서 작동하는 사회의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구조라는 영역에 속박되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는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조가 주는 힘에 눌려 세상에 대하여 불평을 할 지언정, 그것을 바꾸고, 소통해나가는 힘이 내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학에는 다양한 방법론들과 입장들이 존재합니다. 가령 미시사회학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도리어 인간의 주관과 감정의 영역을 사회와 따로 떼어놓기는 커녕 통합해서 생각해야 하며, 프렉탈 현상처럼 개별적 인간의 행위를 깊게 이해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압축적이고 추상화된 수준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사회학계의 거장 중 한명인 막스 베버는(비록 베버 자신은 스스로를 경제사학자 또는 경제학자와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주관과 사회의 영역을 따로 떼어 놓고 분리해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지금 님이 이야기하고 계신 내용 역시 타자에 대한 몰이해와 자기 방식에만 국한된 해석은 아닌지 한번 진지하게 고찰해 보셨으면 좋겠군요. 혹시라도 논의에서 벗어나는 문제가 될까봐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만, 제게는 비로그인 아이디의 IP가 보입니다(블로그 관리를 하기 위해 관리자 모드로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님이 제 블로그에 와서 덧글을 다는 동안 몇 번 님이 사용하는 아이디를 바꿨다고 해서, 님을 심심할 때마다 아이디를 바꾸고 비로그인의 힘을 빌려 서로 다른 사람인 척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의견을 쏟아내는 사람 정도로 묘사하고 첨언을 늘어놓았다면, 님의 기분은 어땠을 것 같습니까?

    제게 충고를 해주시고 좋은 말씀 주시는 것들에 대해서는 감사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님의 생각으로 제 행동들을 일방적으로 해석을 하시고는 제게 무언가 달라질 것을 성급하게 요구하지는 마십시오. 최소한 님이 느낀 느낌과 제가 느낀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 전제로서 저도 어렵지만 님의 의견이 일면 타당함을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소통과 제가 님 말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태도를 수정한다는 말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음을 숙지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2009/08/22 17:44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호반새 2009/08/22 17:54 #

    아닙니다. 혹시 본의아니게 밝히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밝히게 된 것은 아닌가 싶어 죄송해지는군요. 그래도 여러가지로 주신 의견에 도움을 많이 받았답니다. 진작에 알아보고 보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으련만, 아쉬워지는군요. 배운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앞으로도 자주 놀러오시고 즐겁게 맞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도 대인관계는 많이 서툰 사람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님이 제게 상처를 입히려고 그랬다든가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러지는 않으셨다고 믿습니다. 여러 모로 감사드립니다. :) 너무 미안해 하지 말아요.
  • .. 2009/08/22 18:11 # 삭제

    나쁜 뜻이 없던 게 아니었다고는 확실하게 대답은 못하겠군요. 소통을 원한다는 건 상대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상대가 이럴 것이라고 가정하고 자기 멋대로 이야기를 늘어놓는게 되는 거니까.

    일부러 오해를 만들어서 그 오해에 대항하게 만드는 소통 방식, 이런 걸 선호하는 건 아닌데 자꾸 쓰게 되는군요. 사과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는 건방지게 충고하거나 반론을 제기하는 대신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호반새 2009/08/22 20:38 #

    여러모로 좋은 의견 기대합니다. 아마 제 태도가 딱딱해보여서 저놈 좀 골려주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대게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일방적으로 한 쪽의 책임인 경우보다는 양 쪽 모두의 과실 때문인 경우가 많죠. 딱히 전 제가 아주 잘했다거나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퉁명스러워보이는 성격 덕분에 오해도 많이 삽니다.
  • 2009/08/22 17:59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호반새 2009/08/22 20:37 #

    특별히 기분이 몹시 상했다든가 불쾌했던 것은 아닙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이메일은 잘 확인하는 편이 아니라서(메신저도 그렇고) 특별히 공개해놓지는 않고 있어요. :)
  • 라이 2009/08/23 22:57 # 답글

    제가 존경하는 김영민 선생님의 일리(一理)의 철학이 생각나는 논쟁이네요. 모든 말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그게 간혹 기준없음과 구분되지 않기때문에 극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약간 다른 주제지만, 가치판단과 취향은 확실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절대적 가치가 있느냐 하면 이것은 또 다른 주제로 나아가니 별개의 문제로 하고.. 논쟁으로 돌아가서 언어로 풀어낸 정체성이 스스로를 규정한다는 말씀은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정체성을 초월 하기 위해서는 정체성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산은 산, 물은 물'(정),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반)',그리고 다시 '산은 산, 물은 물(합)'이 아닐까 싶네요. 변증법이 만병통치론은 아니지만 꽤 신뢰할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호반새님은 앞으로 더 나아가실 거고 그러기에 '정체성'에 대한 확립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지금의 정체성을 부정하실 때도 있을 수 있을 거고 뛰어넘을 때도 오지 않을까요??
  • 호반새 2009/08/23 23:32 #

    어떤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정체성이 무엇인지 최소한의 정의 정도는 내릴 수 있어야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덧글에 담론 이야기를 쓴 것입니다.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부르주아들은 그간의 문란한 성문화를 종식시키고 엄격한 청교도주의 윤리에 맞추어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서 한정시키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그 덕분에 성에 대한 담론들을 만들어 무엇이 정상적인 성행위이며 무엇이 비정상적인 성행위인지 정확히 정의를 내리고자 하였고, 이렇게 해서 부정적으로 정의내려진 성행위들-가령 자위행위라든가, 동성애 등등-에 대해서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강하게 철퇴를 내리려 했지요.

    푸코가 담론이 권력을 가진다고 이야기 했던 건 이러한 맥락 때문입니다. 무엇을 정의내리고 그 정의를 바탕으로 규제를 가하고자 하는 순간, 정의를 내리며 해당 주제에 대한 담론들을 생성해내는 사람들에게는 모종의 '권력' 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언어로 무엇인가를 지칭한다는 것은, 우미라 그냥 머리 속으로 '그러려니'하고 있는 행위들을 보다 명확하게 입증하고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훨씬 더 정치적이며 통제 가능한 속성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명확한 의도가 드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담을 넘으려는 학생에게 학생 주임이 그 학생이 지금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알면서도 '너 뭐하는 짓이야!' 라고 묻는 까닭은 그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정의내리게끔 만들고 그러한 언어적 제약에 자신을 묶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게끔 만들고자 하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저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내리는 과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정형화 될 수 있는 자신의 본질을 꿰뚫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소통해가며 바꾸어 보고자 합니다. 이 글에서도 명확히 관찰할 수 있다시피, 일단 제가 제 언어로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서 규정해 놓고, 그것을 언어로서 전달하면 저를 바라 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 밑에 저마다의 의견을 덧붙이며 그것을 지지하거나,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보충할만한 내용들을 가지고 오면서 비로소 진정한 상호작용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축적되어진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 + 그것을 바라보는 타자들의 시각은 끊임 없이 충돌하고 뒤섞이면서 나라는 주체의 역량을 한층 더 키워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글을 통해 의도하고자 하는 바 입니다. :)
  • 호반새 2009/08/23 23:39 #

    추신. 위의 논쟁에서 상당히 공감한 부분이 하나 있다면 지나치게 정체성을 강화할 경우 그것이 도리어 자신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고 특정한 방향으로만 스스로를 해석되어질 수 있게 강제하는 언어적 굴레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는데, 문제는 저 자신이 정체성을 그렇게까지 신봉하고 있지 않은데다가 어디까지나 제 언어로 심심해서 한 번 정의를 내려본 것이지, 누가 지금 제가 쓴 호반새에 대한 글을 읽고 '흠, 님 성격이랑은 안어울리는 거 같은데요.' 내지는 '제가 바라보는 님과는 좀 거리가 있는거 같아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특별히 화를 낼 것은 아니거든요. 말 그대로 하나의 단편적인 생각에 불과할 뿐, 사실 저도 저 자신이 어떤 놈인지는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가지고 지레짐작하듯이 댁은 너무 자기 언어로만 자기를 규정하려고 한다, 라면서 거기다 평소에 이 블로그의 글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드러난 제 행실들 몇 개만 가지고서 제멋대로 추측을 하게 될 경우 화가 나는 겁니다. 오히려 저에게 저 자신을 규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상대 측에서 단지 블로그를 통해 드러난 단편적인 사실들 몇 개만 가지고 저를 어떠어떠한 인간으로 규정짓고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요. 그러니까 한 쪽에게 규정짓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도리어 그 말을 하는 쪽에서는 매우 파편적인 정보를 통해 수집한 저라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像)를 정해 놓고 대화를 하자고 하니 평등하지 못한 거지요.

    그래도 뭐 나름대로는 좋은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고견 감사드립니다. :)
  • 라이 2009/08/24 00:00 # 답글

    결국 인간 관계라 또 다른 의미로 '거울과 같다'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호반새 2009/08/24 00:32 #

    감사합니다. 라이님도 좋은 저녁 보내세요! ^^
  • 레몬 2009/08/30 10:01 # 삭제 답글

    '마초적이지 않은 사람' 이라...
    요새 마초적 성질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사람이 이성만으로 살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모두 마초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마초적이지 않은 사람' 이라는건 불분명한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면에선 마초고 어떤면에선 인간적인 향수가 나는게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 호반새 2009/08/31 13:39 #

    사람은 항상 이성적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성적이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내면에 마초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발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의식화하며 통제하려고 '노력'해 볼 수는 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분노가 들더라도, 사람을 함부로 때리거나 죽이면 안되는 것처럼, 자기 안에 있는 폭력성 역시 남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아니 누군가 그것을 거북하게 생각한다면 적절히 자제해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상대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꼭 마초적인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게 저의 입장입니다. 이를테면 자기 아내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적들과 맞서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가장 아버지의 경우, 자신이 마초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며 그렇게 죽어가야 했다는 사실에 대해 영광을 느꼈을 것이고, 그의 가족들 역시 그러한 아버지를 둔 것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생각하겠지요. 다만, 마초 역시 '선택'입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하지 않는 남성들 혹은 여성들에게 특정한 삶의 굴레를 강요하면서 남자니까, 또는 여자니까 이런이런식으로 행동할 것, 안 그러면 너는 이상한 인간. 이렇게 못박는 순간 그것은 선택이 아닌 '폭력'이 됩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들, 이를테면 '사내새끼가...', '다 큰 처녀가...', '병신같은 게...' 같은 표현들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되고 억압으로 작용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폭력임을 인지하고 그만둘 수 있어야 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순간, 그 안에서는 권력 관계가 발생하며 사람이 자유롭게 살아갈 의지를 정당한 이유 없이 박탈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저 자신을 페미니스트보다는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마초든, 여성스럽든, 키가 작든, 뚱뚱하든, 못생겼든, 돈이 없든, 그냥 저 사람은 원래 그런가보다, 하고 인정받으며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내버려둘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제 희망이라면 희망이거든요. 누구도 타인에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 혹은 그녀가 명백하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했거나 법률을 어긴 것이 아닌 이상 모든 삶의 방식들은 나름대로 존중되어질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작업을 위해 이성은 필요합니다.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대했던 대상들에 대하여 편견이 있음을 인정하고 내려 놓는 것, 속으로는 여전히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고, 시원찮은 구석이 있다고 여겨질지라도 남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내 기준에 맞춰 함부로 재단하지 않게 노력하는 것, 이러한 작업들을 행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이성이며 의지이기 떄문입니다.

    '불분명하다'고 해서 그런 사람은 있기 힘들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인간적인 향수'가 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고의가 아니더라도 상처를 입히는 행동들에 대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평생 편견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도록 자신을 채찍질 할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졌는데 이정도면 충분한 답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레몬 2009/08/31 17:09 # 삭제

    호반새님이 생각하는 이상을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친절한 답글 감사합니다. (사실 이렇게 길줄은 몰랐는데 ㅎㅎ)

    그러니까 요약하면...
    '각자의 가치관, 삶은 존중되야 하고 우리 모두 이성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읽어도 되나요?
    그렇다면 저도 그말엔 기꺼이 동의합니다. 애초에 가진 사상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님이 생각하시는 마초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정의(definition)를 알것 같습니다.
    -'이성적으로 고려하지않고 상대방을 무시하고 깔보는것' 이라고 읽히는데, 맞나요?-

    마초-여기서 말하는 마초는 사회적,인간적으로 용인될만한 성질이겠죠?-가 무조건 나쁘다는것은 아니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말자체엔 동의하지만
    어떤사람에게는 a(마초적 성질)가 맘에 들수 있지만 어떤사람에게는 부정적으로 인식될수도 있지 않을까요? -드러내놓고 마초행위로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반감은 들지 않겠지만 무의식중에 꺼리겠죠?..-

    결국 마초의 선악에 대한문제는 개인마다 판단이 다를수 있으니 단순히 '마초적이지 않은 사람' 이라고 정의하면 모호하게 들릴수밖에 없습니다.

    님이 의도하신대로라면 '마초행위로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는사람' 이라고 적는게 명확하고 분명하지 않을까요?

    사실 저는 호반새님이 마초적인 면중 어떤것을 善으로 생각하는지, 어떤것을 惡으로 간주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 호반새 2009/09/01 01:51 #

    대체적으로 맞는데 약간 핀트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마초의 부정적인 부분은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태도를 일방적으로 타자들에게 강요하거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여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이유 없이 억누르려고 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긍정적인 부분에서는 타인,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그들을 책임감 있게 돌보려는 정신 같은 것을 들 수 있겠군요. 정의내리기 쉽지는 않습니다만 최대한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마초적 성질이 좋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해야할 일은 사람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그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수준으로 적절히 조종하는 것이겠지요. 이를테면 매우 친한 동성 친구들이 있을 때, 친구들의 양해를 받은 상태로 행하는 격의 없는 농담들은 이해받고 웃음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마구 남발하고 거기에 맞춰줄 것을 요구하면서 그 행동이 무엇이 잘못됐는지조차 모를 때 그것은 궁극적으로 폭력이 됩니다. 따라서 끊임 없이 자신의 행동들에 대하여 성찰하며 같은 성격이라도 장소와 시간, 상대에 맞춰 적절히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초라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제가 작성한 제 프로필의 일부까지 '마초행위로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는사람' 이라고 정의내릴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 못하겠네요. 개념이 모호하다고 해서 혹은 사람마다 정의내리기 어렵다고 해서 그런 표현을 지양해야 한다는 까닭을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엄밀한 학술적 글이나 정보전달의 목적이 아닌 한 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기술적으로 표현하는 글에 그러한 정밀성이 필요할지, 그리고 타자가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하여 몹시 회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다소 언짢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로맨티스트'라는 말은 사람마다 정의하는 내용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을 로맨티스트라고 묘사한다고 하여서 누구도 그 개념에 대한 적확한 정의를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저기서 굳이 마초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은, 명확하게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정해놓고 그것을 타자에게 강요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 저 자신이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하필이면 이상형이라고 쓰여진 부분을 지적하시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입니다만, 제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상형이란 말 그대로 하나의 허상에 불과할 뿐,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지는 못합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마음 속에 담고 아끼는 이상 그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잃고 싶지 않은 이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니까요.

    차라리 마초가 친구라면 얼굴을 안 보거나 적당한 선에서 불쾌하다고 표현하고 말을 자르게 만들면 되지만, 그가 연인이 될 경우 나의 삶과 모든 생활적인 부분에 불쾌한 태도를 가지고 참견할 가능성이 농후해지는만큼 원치 않는 분쟁이 일어나고 서로가 서로에게 피곤해지기 쉽습니다. 저도 사람인 이상, 매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애착관계를 교환할 상대에 대한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고, 일정 이상 친해지기를 원할 경우 상대에게 선호하게 되는 자질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자질들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저와 대화를 하거나 친구가 될 수는 있습니다만, 연인으로는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혼자 마초인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치도 않는데 마음대로 개입해서 자신의 가치관을 상대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주입하려고 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상대의 자율권을 법적으로 박탈하거나 치안 유지 혹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에 대한 방지를 위해 이루어지는 가치관의 주입이나 규칙 따위라면 모를까, 특정한 삶의 방식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별다른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따를 것을 강요하는 태도가 저는 정말이지 싫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언급드리자면, 저는 제 사적인 것에 대해서 별로 친하지 않거나 면식 없는 분꼐서 세세하게 캐묻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한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레몬 2009/09/01 11:00 # 삭제

    요구할 목적으로 그랬다기보다 정밀하게 알고싶었던 마음에 그랬습니다

    제가 호반님이 가볍게 쓰신것을 엄격히 따지고 들은게 언짢게 느껴지셨나봅니다
    글내용이 맘에 안들어서도 아니고 기분을 해칠 의도가 있었던것도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포스팅들 보니까 생각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호감이 느껴진다는게 이런식으로 표현됬나봅니다..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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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님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