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돼. 벌써 마지막 학기에 접어들었다. 졸업 신청을 하고 나서 학점을 계산해 보니, 아뿔싸! 학과에서 제공한 졸업 학점 관련 안내에서 별표 첨부한 주석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탓인지, 당초 계산과는 다르게 3 학점이 부족하다. 부랴부랴 사회학 과목 하나를 더 찾아서 넣는다. 어라? 3000 ~ 4000 단위 과목 45 학점 이수사항에서도 한 과목이 부족하단다. 다시 열심히 과목을 찾기 시작한다. 유럽학 과목은 유감스럽게도 반드시 이수해야하는 다른 과목들과 시간대가 겹치고, 또 다른 과목들은 단위수가 달라서 듣고 싶어도 졸업 요건에 맞지 않는다. 어떡한다?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문화, 라는 이름으로 학부에 개설된 과목들을 검색해보기 시작한다. 문화학의 기본 이론. 수상한 이름의 과목 하나가 눈에 띈다.
담당교수 이상룡…어디보자…강의 계획서를 뒤적여 본다. 몇몇 문구가 눈에 띈다.
…이 강의를 수강할 마음을 먹게 되면, 서로 한 학기 동안 서로 힘을 합쳐서 이 강의의 주춧돌을 놓을 결심을 해주기 바랍니다. 한 학기 동안 서로 눈빛으로 교감하면서 더불어 기초를 잡아나게게 되면, 우리가 대학에서 이뤄내보고 싶은 의미있는 결과를 진정으로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이 더불어 토론하며 배워나가겠다는 `진정성어린`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를 가진 이라면 이 강의의 수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허허. 요즘 세상에 이런 교수님도 계시나. 웃는다. 한 번 들어나 볼까. 별 생각 없이 과목 명을 클릭한다. 마케팅이니 경제학 원론 같은 과목들과는 다르게 수강 인원이 남아 돈다. 수강 신청의 시작일에 아침 9 시가 땡 치고나면 득달같이 다른 과목들이 마감되는 반면 이 과목은 수강 정원 30 명에서 남은 인원이 좀체로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이 과목만 수강 신청에 성공하고 다른 과목들은 죄다 실패하고 나서 우는 소리로 학과 사무실과 학부대학에 전화 좀 넣어 본 다음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나같은 게으름뱅이에게 있어서 수강 신청 하나를 위해 전날 새벽 3 시 즈음 잠들고도 아침 8 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개강 당일, 교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뽀뽀뽀라는 어린이용 프로그램에 나와 꽤 오랫동안 사회를 보았던 뽀식이 아저씨를 닮은, 자신을 노어노문학과 박사과정생이라고 소개한 사내 한 명이 성큼 성큼 걸어 들어와서는 어수룩한 목소리로 출석을 부르고, 인트로덕션을 한다. "아, 저, 교수님이, 학회 준비로, 출국해 계셔서…." 덩치에 맞지 않는 소심함에 한 번 놀라고, 기대했던 수업이었건만 교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이 겹쳐진다. 십 분여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교실 문이 열리고는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괜한 기대였을까. 한숨을 내쉬며, 나도 등을 돌리고 문을 향해 걷는다.
그 순진해 보이기 짝이 없는 수업 계획서를 조근 조근 적어 놓은 진짜 인물을 만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1 주일 후의 일이었다. 자신을 노어 노문학과 교수라고 소개한 그 양반은 땅딸막한 체구와 거의 다 벗겨진 희끄무레한 머리칼을 흩날리며 연신 땀을 흘려대고 있었다. 교실은 한산했다. 수강 변경 기간 이후에도 남아 있는 서른 명 남짓한 학생들은 저마다 패잔병같은 모습을 하고 무기력하게 책상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문제의 그 노인은 무언가 다른 일정에 시달리다 늦을까봐서 헐레 벌떡 뛰어온 기색이 역력했다. 교수라기보다는 갓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옆집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발그레한 볼이 마치 크리스마스에나 나올 법한 산타클로스가 평상복을 입고 서 있는 것마냥 보이기도 하였다. 어쨌든 그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한 말투로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대학이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책을 읽고 아무런 비평 없이 지식을 주워 먹기만 하는 것은, 그저 외국에 다 있는 내용들 번역해서 아이들에게 무작정 집어 넣기만 하는 것은…쓰레기밖에 되지 않아…. 여러분은 부끄러워 해야 해. 많이 아는 것이 전부가 아냐. 내 말은, 그걸 얼마나 씹어 삼키고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냐 하는 거야…."
예상 외로 카링카링한 목소리. 깍두기처럼 커다랗고 볼품 없어 보이는 돋보기 안경 뒤로 비치는 그의 눈빛은 적어도 강렬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들어온 이상 여러분은 내 새끼나 마찬가지인 거야. 나는 여러분들의 이름 하나하나와 삶의 궤적과,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위해 학문을 하는지…알고 싶어. 소통하고 알고 싶어. 여러분들의 학점이나 여러분들의 외모나 여러분들의 능력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한 건, 여러분들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하다는 거야…."
나는 이 순박하기 짝이 없는 노인네가 어떻게 지금의 대학 사회와 같은 살벌한 경쟁과 권력의 각축 속에서 살아남았을지 조금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가져온 손수건으로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여러분들에게, 충분히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면, 어디에 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학생들이 될 가라고 생각해. 이 수업은 그런 거야. 이를테면 아주 기본적인 개념을 가지고, 너희들이 너희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려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대학이 해야 할 일이고 선생인 내가 가져야 할 태도지…. 당연히 선생들이야 너희보다 일찍 태어나서 책을 많이 읽었으니 아는 것 그 자체만으로는 너희들보다 조금 많을 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야…. 통찰을 해야지 통찰을. 네들이 나보다 훨씬 더, 편견 없이 사고하고 현상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지식을 가득 채워주는 게 아니라, 너희들 스스로가 체득하게끔 돕고, 그러한 성장을 지켜 보는 것이다. 알겠느냐? 내 말은, 그러니까…이 선생님은 너희들이 생각을 키워내서, 그게 아주 거칠다고 할지라도, 때론 내 의견에 반박해보기도 하고, 정면으로 도전해 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 말이야…."
그리고 나서 그는 뭔가,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담은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 보았다.
"…나는 이런 풍경이 싫어. 원래 나무가 안 보이면 수업을 안 하는데…. 강의실을 바꿔 보아도…보이는 건 다 똑같더군. 요즘 세상은 삭막하기 짝이 없어. 여러분들 수업 끝나면 그저 도서관에 가서 토익, 토플 책 펴놓고 어떡하면 출세할까, 어떡하면 쟤를 짓밟고 올라설까, 그 생각 밖에 안 하잖아. 그런 건 대학이 아니라니까…. 내가 말이지, 이번에 한, 수업을 6 개 정도 해. 바쁘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 그런데 이 수업은 말이야, 내가 아주 정성을 가지고 만든 거라고…. 여러분들에게 기본적인 비판 능력을 키워 주기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 내면의 힘을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
꽤 오랫동안, 그런 식의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뒤이어 노교수는 정말 제 자식들 다루는 양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가며 과는 무엇이고 학번은 어떻게 되며, 몇 살이고 어디서 태어났는지, 왜 이 수업을 들으려고 생각했는지, 이 수업을 통해 너는 무엇을 찾아 나가고 싶으냐고, 천천히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무언가 따듯하고, 형언할 수 없는 다정함이 몸 속으로 깊이 침전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간 날카로운 이론들로 사회 현상들을 분석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하여 거칠게 의문들을 던지며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지독하게 논리적으로 풀어 나가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던 나는, 그래서 지쳐 있었던 나는 어쩐지 작지만 찬란한 빛으로부터 치유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교실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노교수가 했던 말들을.
"…인문학이란 건 말이다, 그냥 지식 나부랭이나 모아서 만들어 낸 거대한 탑 같은 게 아니란 말이야. 성찰과 사유가 필요하다고. 그런데 너네들은 그런 거 안 하잖아. 자꾸 여기 저기서 인문학의 위기네 몰락이네, 말들이 많은데, 나는 그 전에 이런 생각을 해. 우리가 언제 인문학이란 걸 해 보기는 하였나. 너네 혼내려고 이런 말 하는 거 아냐. 다 못난 선생들의 탓이지.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일들은 단지 미국이나 유럽에서 잘 다듬어진 이론들과 작품들을 가져와서는 열심히 번역하고 너희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 뿐이었지…. 거기에 어떤 성찰과 사색이 있었겠어…. 내 말은, 그런 것들을 가져와서 최소한 한국적 구색에 맞게 재구성을 하려는 시도조차도, 그간은 드물게 이루어져 왔고…, 그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야…. 물론 사유를 위해 기본적인 지식은 반드시 필요하지. 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돼. 인문학은 사유와 지식이 함께 움직여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 말을 잊지 말아라…."
나는 노교수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내가 사회학을 선택하게 된 까닭은 이론과 지식이 충분히 뒷받침 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사유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나는 숱하게 많은 책들을 읽었고, 논리적으로 글을 쓰고 이론들을 체득하면서 내가 가진 앎의 깊이를 확장하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이론들에 매몰되어 나 자신을 잃어 가는 과정의 연속이었고, 대게 나는 배운 것들을 되새기고 성찰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계속해서 새로운 사상과 이론들을 흡수하며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결과적으로 앎의 깊이는 확장되었을지 몰라도, 지식이 주는 권위에 매료되어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때로는 이러한 것들에 무지한 타자들을 흠집내고 차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비뚤어진 자의식을 형성해내기도 하였다. 역으로 사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앎의 공부가, 사유 자체를 압도하여 오로지 아는 것만이 전부인 양 학문하는 방식 자체를 왜곡해버리고 만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자, 나는 진심으로 그간 저질러왔던 나의 행보들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날 내내, 어느덧 내가 잊고 살았던 사유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깊이 명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머리 속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하면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 사유와 이론이 차지할 수 있는 균형의 감각을 꽤 오랜 시간 동안 상실하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이제는 사유를 보충함으로서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랜만에 문학 책을 펼쳐들고 워즈워드와 키츠의 시를 읽었다. 그 안에는 내가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인간의 따스함과 이론의 차가움을 넘어서는 인문학적 사유의 통찰이 고즈넉히 깃들어 있었다. 현실에 맞서고 투쟁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학을 택한지 어언 4 년 남짓, 비로소 나는 방황하던 걸음을 접고 나만의 무게중심을 잡아가야 하는 방법들을 체득하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와 함께 소통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여정에서 필요한 것은 논리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움직이고 통찰하게 만드는 마음, 다시 말해 사유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부족하게나마 학부에서 쌓아온 지식이, 그리고 다년간 문학 작품을 읽고 쓰며 건져올린 통찰의 힘이 아직 바닥이나마 남아 있다고 믿으니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가져 본다.
마지막 학기, 마지 못해 고른 과목 중 하나로부터 이처럼 커다란 진리를 발견해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쩐지 이번 한 학기가 정말로 즐거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노교수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자리에 누웠다. 물론 자리에 들기 전에 그가 남겨 놓은 영어로 된 텍스트를 줄줄이 읽으면서 투덜거리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그는 아마 마음에 들어 하지 않겠지만, 땅딸보 산타라고 불러야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나는 편안히 눈을 감고 즐거움의 나락으로 빠져 들었다.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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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내용의 깨달음을 차갑게 풀어서 쓴 글 : (▶여기를 클릭하면 이동함)
나는 사회과학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이와 같이 하나의 현상과 깨달음에 대하여 서로 상반된 방식의 글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오래 전 글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시집을 읽으면서 동시에 실증적인 연구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사회과학도이기 때문에.
담당교수 이상룡…어디보자…강의 계획서를 뒤적여 본다. 몇몇 문구가 눈에 띈다.
…이 강의를 수강할 마음을 먹게 되면, 서로 한 학기 동안 서로 힘을 합쳐서 이 강의의 주춧돌을 놓을 결심을 해주기 바랍니다. 한 학기 동안 서로 눈빛으로 교감하면서 더불어 기초를 잡아나게게 되면, 우리가 대학에서 이뤄내보고 싶은 의미있는 결과를 진정으로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이 더불어 토론하며 배워나가겠다는 `진정성어린`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를 가진 이라면 이 강의의 수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허허. 요즘 세상에 이런 교수님도 계시나. 웃는다. 한 번 들어나 볼까. 별 생각 없이 과목 명을 클릭한다. 마케팅이니 경제학 원론 같은 과목들과는 다르게 수강 인원이 남아 돈다. 수강 신청의 시작일에 아침 9 시가 땡 치고나면 득달같이 다른 과목들이 마감되는 반면 이 과목은 수강 정원 30 명에서 남은 인원이 좀체로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이 과목만 수강 신청에 성공하고 다른 과목들은 죄다 실패하고 나서 우는 소리로 학과 사무실과 학부대학에 전화 좀 넣어 본 다음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나같은 게으름뱅이에게 있어서 수강 신청 하나를 위해 전날 새벽 3 시 즈음 잠들고도 아침 8 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개강 당일, 교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뽀뽀뽀라는 어린이용 프로그램에 나와 꽤 오랫동안 사회를 보았던 뽀식이 아저씨를 닮은, 자신을 노어노문학과 박사과정생이라고 소개한 사내 한 명이 성큼 성큼 걸어 들어와서는 어수룩한 목소리로 출석을 부르고, 인트로덕션을 한다. "아, 저, 교수님이, 학회 준비로, 출국해 계셔서…." 덩치에 맞지 않는 소심함에 한 번 놀라고, 기대했던 수업이었건만 교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이 겹쳐진다. 십 분여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교실 문이 열리고는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괜한 기대였을까. 한숨을 내쉬며, 나도 등을 돌리고 문을 향해 걷는다.
그 순진해 보이기 짝이 없는 수업 계획서를 조근 조근 적어 놓은 진짜 인물을 만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1 주일 후의 일이었다. 자신을 노어 노문학과 교수라고 소개한 그 양반은 땅딸막한 체구와 거의 다 벗겨진 희끄무레한 머리칼을 흩날리며 연신 땀을 흘려대고 있었다. 교실은 한산했다. 수강 변경 기간 이후에도 남아 있는 서른 명 남짓한 학생들은 저마다 패잔병같은 모습을 하고 무기력하게 책상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문제의 그 노인은 무언가 다른 일정에 시달리다 늦을까봐서 헐레 벌떡 뛰어온 기색이 역력했다. 교수라기보다는 갓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옆집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발그레한 볼이 마치 크리스마스에나 나올 법한 산타클로스가 평상복을 입고 서 있는 것마냥 보이기도 하였다. 어쨌든 그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한 말투로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대학이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책을 읽고 아무런 비평 없이 지식을 주워 먹기만 하는 것은, 그저 외국에 다 있는 내용들 번역해서 아이들에게 무작정 집어 넣기만 하는 것은…쓰레기밖에 되지 않아…. 여러분은 부끄러워 해야 해. 많이 아는 것이 전부가 아냐. 내 말은, 그걸 얼마나 씹어 삼키고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냐 하는 거야…."
예상 외로 카링카링한 목소리. 깍두기처럼 커다랗고 볼품 없어 보이는 돋보기 안경 뒤로 비치는 그의 눈빛은 적어도 강렬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들어온 이상 여러분은 내 새끼나 마찬가지인 거야. 나는 여러분들의 이름 하나하나와 삶의 궤적과,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위해 학문을 하는지…알고 싶어. 소통하고 알고 싶어. 여러분들의 학점이나 여러분들의 외모나 여러분들의 능력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한 건, 여러분들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하다는 거야…."
나는 이 순박하기 짝이 없는 노인네가 어떻게 지금의 대학 사회와 같은 살벌한 경쟁과 권력의 각축 속에서 살아남았을지 조금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가져온 손수건으로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여러분들에게, 충분히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면, 어디에 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학생들이 될 가라고 생각해. 이 수업은 그런 거야. 이를테면 아주 기본적인 개념을 가지고, 너희들이 너희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려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대학이 해야 할 일이고 선생인 내가 가져야 할 태도지…. 당연히 선생들이야 너희보다 일찍 태어나서 책을 많이 읽었으니 아는 것 그 자체만으로는 너희들보다 조금 많을 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야…. 통찰을 해야지 통찰을. 네들이 나보다 훨씬 더, 편견 없이 사고하고 현상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지식을 가득 채워주는 게 아니라, 너희들 스스로가 체득하게끔 돕고, 그러한 성장을 지켜 보는 것이다. 알겠느냐? 내 말은, 그러니까…이 선생님은 너희들이 생각을 키워내서, 그게 아주 거칠다고 할지라도, 때론 내 의견에 반박해보기도 하고, 정면으로 도전해 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 말이야…."
그리고 나서 그는 뭔가,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담은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 보았다.
"…나는 이런 풍경이 싫어. 원래 나무가 안 보이면 수업을 안 하는데…. 강의실을 바꿔 보아도…보이는 건 다 똑같더군. 요즘 세상은 삭막하기 짝이 없어. 여러분들 수업 끝나면 그저 도서관에 가서 토익, 토플 책 펴놓고 어떡하면 출세할까, 어떡하면 쟤를 짓밟고 올라설까, 그 생각 밖에 안 하잖아. 그런 건 대학이 아니라니까…. 내가 말이지, 이번에 한, 수업을 6 개 정도 해. 바쁘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 그런데 이 수업은 말이야, 내가 아주 정성을 가지고 만든 거라고…. 여러분들에게 기본적인 비판 능력을 키워 주기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 내면의 힘을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
꽤 오랫동안, 그런 식의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뒤이어 노교수는 정말 제 자식들 다루는 양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가며 과는 무엇이고 학번은 어떻게 되며, 몇 살이고 어디서 태어났는지, 왜 이 수업을 들으려고 생각했는지, 이 수업을 통해 너는 무엇을 찾아 나가고 싶으냐고, 천천히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무언가 따듯하고, 형언할 수 없는 다정함이 몸 속으로 깊이 침전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간 날카로운 이론들로 사회 현상들을 분석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하여 거칠게 의문들을 던지며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지독하게 논리적으로 풀어 나가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던 나는, 그래서 지쳐 있었던 나는 어쩐지 작지만 찬란한 빛으로부터 치유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교실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노교수가 했던 말들을.
"…인문학이란 건 말이다, 그냥 지식 나부랭이나 모아서 만들어 낸 거대한 탑 같은 게 아니란 말이야. 성찰과 사유가 필요하다고. 그런데 너네들은 그런 거 안 하잖아. 자꾸 여기 저기서 인문학의 위기네 몰락이네, 말들이 많은데, 나는 그 전에 이런 생각을 해. 우리가 언제 인문학이란 걸 해 보기는 하였나. 너네 혼내려고 이런 말 하는 거 아냐. 다 못난 선생들의 탓이지.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일들은 단지 미국이나 유럽에서 잘 다듬어진 이론들과 작품들을 가져와서는 열심히 번역하고 너희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 뿐이었지…. 거기에 어떤 성찰과 사색이 있었겠어…. 내 말은, 그런 것들을 가져와서 최소한 한국적 구색에 맞게 재구성을 하려는 시도조차도, 그간은 드물게 이루어져 왔고…, 그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야…. 물론 사유를 위해 기본적인 지식은 반드시 필요하지. 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돼. 인문학은 사유와 지식이 함께 움직여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 말을 잊지 말아라…."
나는 노교수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내가 사회학을 선택하게 된 까닭은 이론과 지식이 충분히 뒷받침 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사유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나는 숱하게 많은 책들을 읽었고, 논리적으로 글을 쓰고 이론들을 체득하면서 내가 가진 앎의 깊이를 확장하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이론들에 매몰되어 나 자신을 잃어 가는 과정의 연속이었고, 대게 나는 배운 것들을 되새기고 성찰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계속해서 새로운 사상과 이론들을 흡수하며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결과적으로 앎의 깊이는 확장되었을지 몰라도, 지식이 주는 권위에 매료되어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때로는 이러한 것들에 무지한 타자들을 흠집내고 차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비뚤어진 자의식을 형성해내기도 하였다. 역으로 사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앎의 공부가, 사유 자체를 압도하여 오로지 아는 것만이 전부인 양 학문하는 방식 자체를 왜곡해버리고 만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자, 나는 진심으로 그간 저질러왔던 나의 행보들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날 내내, 어느덧 내가 잊고 살았던 사유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깊이 명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머리 속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하면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 사유와 이론이 차지할 수 있는 균형의 감각을 꽤 오랜 시간 동안 상실하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이제는 사유를 보충함으로서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랜만에 문학 책을 펼쳐들고 워즈워드와 키츠의 시를 읽었다. 그 안에는 내가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인간의 따스함과 이론의 차가움을 넘어서는 인문학적 사유의 통찰이 고즈넉히 깃들어 있었다. 현실에 맞서고 투쟁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학을 택한지 어언 4 년 남짓, 비로소 나는 방황하던 걸음을 접고 나만의 무게중심을 잡아가야 하는 방법들을 체득하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와 함께 소통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여정에서 필요한 것은 논리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움직이고 통찰하게 만드는 마음, 다시 말해 사유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부족하게나마 학부에서 쌓아온 지식이, 그리고 다년간 문학 작품을 읽고 쓰며 건져올린 통찰의 힘이 아직 바닥이나마 남아 있다고 믿으니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가져 본다.
마지막 학기, 마지 못해 고른 과목 중 하나로부터 이처럼 커다란 진리를 발견해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쩐지 이번 한 학기가 정말로 즐거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노교수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자리에 누웠다. 물론 자리에 들기 전에 그가 남겨 놓은 영어로 된 텍스트를 줄줄이 읽으면서 투덜거리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그는 아마 마음에 들어 하지 않겠지만, 땅딸보 산타라고 불러야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나는 편안히 눈을 감고 즐거움의 나락으로 빠져 들었다.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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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내용의 깨달음을 차갑게 풀어서 쓴 글 : (▶여기를 클릭하면 이동함)
나는 사회과학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이와 같이 하나의 현상과 깨달음에 대하여 서로 상반된 방식의 글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오래 전 글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시집을 읽으면서 동시에 실증적인 연구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사회과학도이기 때문에.


덧글
사유 2009/09/11 15:22 # 답글
아직도 이런 교수님이 남아계시는군요. 부럽습니다.
호반새 2009/09/13 13:54 #
운이 좋았지요. 이번 학기 많은 부분에서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코 2009/09/12 22:48 # 삭제 답글
소설이나 영화에나 남아있을 법한 교수님이시네요. 정말 부러워요.그나저나 좀 다른 이야기인데, 어릴 때 부모님께서 반신욕기를 집에 사다 놓으셔서, 의무적으로 하루 한 번씩 사용하곤 했거든요. 그때마다 김영랑이나 윤동주의 시집을 들고와서 한참동안 읽고 또 읽고 했었는데, 그땐 그렇게 깊고 촉촉하게 느껴지던 시들이, 고등학교 수능 공부하려고 줄 긋고 분석하고 있자니 한 줌의 텍스트가 되어 부스러지는 것 같아 답답하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시들과 함께 고사해간 문학적 호기심은, 법학을 배우면서 그나마도 뿌리 채 뽑혀나간 것 같네요.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다능 ㅠ
호반새 2009/09/13 13:55 #
이전에 코 글에서 비슷한 내용 읽었던 거 같네요. 시는 그렇게 마구 분해해서 주입식으로 집어넣는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데...이 나라의 공부방식은 한참 잘못되어도 잘못된 듯.그나저나 법이야말로 암기의 전당이로군요(...). 사시 준비하려면.
참, 과외비 나왔어요. 소까지 모셔놓고 언제 한번 술한잔 하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