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다닌다는 게, 감투쯤 되는 줄 아는 걸까. 젊음을 무기로 '시니컬함'이 마치 미덕이라도 된다는 듯이, 찍 써갈긴 글에다 대고 제멋대로 가치 판단을 일삼고, 누군가를 자기만의 잣대로 규정하여 '들어줄 만한 것' 과 '아닌 것'으로 나눈다…?
책을 읽는 것보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나 마시며 섹스 앤 더 시티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이 나쁘다고 누구도 규정지을 수 없다.
생각하지 않고, 그저 외우면서 공부하는 것이 더 익숙하다고 해서 모두가 바보인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저들과는 다르다고,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확인받기 위하여, 그대가 마음대로 '사회'라는 틀을 가져다가 타인을 심판하고, 거기에 '명목'으로서 당위성을 가져다 붙인 것 뿐이겠지. 자신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옳지 못한 것이라고 몰아가지 말길 바란다. 그대의 구별지음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그대의 오만함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작은 행복을 부수는 커다란 위협이 된다.
그들의 행동이 꼴사납고 아니꼬와 보일지라도, 때로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기 이전에, 최소한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면 비난하는 대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바꿀 수 있게 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존중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그대의 삶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권리는 가지지 못하듯이.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치를 용인하고,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런 맹목적인 다원주의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비겁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개인적으로 싫어서, 아니라고 생각한 것들을 교묘히 변형시켜 마치 사회적인 문제인 양 호소하거나, 섣불리 가치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막말로, 생각 없이 살아가는 듯이 보이는 다수가, 그대의 재산에 손해를 입히거나, 비수로 그대를 찔러 물리적인 상처를 준 것도 아닌데, 왜 그리도 그대는 그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건가. 그렇게 남을 향해 싸잡아서 손가락질을 날리는 그대는 정녕 고귀하고도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어째서 책을 읽는 것은 의미 있는 행위이고, 커피를 마시면서 연예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천박하며 들어줄 가치조차 없는 행동으로 전락해야 하는가. 옳고 그름이란 누가 정하는 것인가? 그토록 쿨한 척 하는 그대 자신 조차도 사실은 모더니즘의 노예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라. 진보와 보수, 옳고 그름, 변화와 정체처럼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구획하여 판단하려는 시도들이 결국 우리의 발을 묶었고, 불평등과 각종 소외들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견지에서, 지적 니힐리즘(nihilism)이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아나키즘(anarchism)과 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권위와 부당한 억압, 구별지음을 거부하려는 의지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대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던 판단의 틀이 사실은 사회를 둘러싼 권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과 힘의 논리에 따라 파생된 결과라는 것, 그대가 내리는 섣부른 판단 하나하나가 그대의 편견을 합리화시켜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그대는 오만과 독선의 틀에서부터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결국은 그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둘로 나눠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대 자신의 정치적이고도 뒤틀린 자아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좀 더 당당해져라. '한심한 것' 과 '한심하지 않은 것'을 제멋대로 나눠가며 정의의 사도가 되느니, 차라리 나는 당당한 악당으로 살아가겠다. 편을 가르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자각하고 극복하지는 못할 지언정, 그러한 행동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합리화시키려고 들지 말았으면 한다. 세상의 진리는 그렇게 둘로 쪼갤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모든 현상에는 이면을 넘어서는 의미와 구조적인 심오함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나 자신 조차도, 판단을 내리기엔 나약하고 이기적인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다.
'싫음'을 합리화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부족함과 이기심이 발현된 결과로서 이해할 줄 아는 것은 차라리 용기 있는 행동이다. 개인은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구별지음을 실현할 때가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러한 구별짓기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는 유토피아적인 순수함의 추구가 아니다. 다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에 가깝다.
좀 더 솔직한 그대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정의를 가장하여 구별지음을 강제하려하는 그대의 잔인함이 두렵다.
책을 읽는 것보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나 마시며 섹스 앤 더 시티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이 나쁘다고 누구도 규정지을 수 없다.
생각하지 않고, 그저 외우면서 공부하는 것이 더 익숙하다고 해서 모두가 바보인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저들과는 다르다고,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확인받기 위하여, 그대가 마음대로 '사회'라는 틀을 가져다가 타인을 심판하고, 거기에 '명목'으로서 당위성을 가져다 붙인 것 뿐이겠지. 자신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옳지 못한 것이라고 몰아가지 말길 바란다. 그대의 구별지음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그대의 오만함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작은 행복을 부수는 커다란 위협이 된다.
그들의 행동이 꼴사납고 아니꼬와 보일지라도, 때로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기 이전에, 최소한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면 비난하는 대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바꿀 수 있게 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존중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그대의 삶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권리는 가지지 못하듯이.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치를 용인하고,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런 맹목적인 다원주의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비겁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개인적으로 싫어서, 아니라고 생각한 것들을 교묘히 변형시켜 마치 사회적인 문제인 양 호소하거나, 섣불리 가치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막말로, 생각 없이 살아가는 듯이 보이는 다수가, 그대의 재산에 손해를 입히거나, 비수로 그대를 찔러 물리적인 상처를 준 것도 아닌데, 왜 그리도 그대는 그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건가. 그렇게 남을 향해 싸잡아서 손가락질을 날리는 그대는 정녕 고귀하고도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어째서 책을 읽는 것은 의미 있는 행위이고, 커피를 마시면서 연예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천박하며 들어줄 가치조차 없는 행동으로 전락해야 하는가. 옳고 그름이란 누가 정하는 것인가? 그토록 쿨한 척 하는 그대 자신 조차도 사실은 모더니즘의 노예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라. 진보와 보수, 옳고 그름, 변화와 정체처럼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구획하여 판단하려는 시도들이 결국 우리의 발을 묶었고, 불평등과 각종 소외들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견지에서, 지적 니힐리즘(nihilism)이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아나키즘(anarchism)과 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권위와 부당한 억압, 구별지음을 거부하려는 의지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대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던 판단의 틀이 사실은 사회를 둘러싼 권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과 힘의 논리에 따라 파생된 결과라는 것, 그대가 내리는 섣부른 판단 하나하나가 그대의 편견을 합리화시켜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그대는 오만과 독선의 틀에서부터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결국은 그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둘로 나눠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대 자신의 정치적이고도 뒤틀린 자아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좀 더 당당해져라. '한심한 것' 과 '한심하지 않은 것'을 제멋대로 나눠가며 정의의 사도가 되느니, 차라리 나는 당당한 악당으로 살아가겠다. 편을 가르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자각하고 극복하지는 못할 지언정, 그러한 행동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합리화시키려고 들지 말았으면 한다. 세상의 진리는 그렇게 둘로 쪼갤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모든 현상에는 이면을 넘어서는 의미와 구조적인 심오함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나 자신 조차도, 판단을 내리기엔 나약하고 이기적인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다.
'싫음'을 합리화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부족함과 이기심이 발현된 결과로서 이해할 줄 아는 것은 차라리 용기 있는 행동이다. 개인은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구별지음을 실현할 때가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러한 구별짓기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는 유토피아적인 순수함의 추구가 아니다. 다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에 가깝다.
좀 더 솔직한 그대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정의를 가장하여 구별지음을 강제하려하는 그대의 잔인함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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