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 문화와 사회(culture & society, english course)라는 과목을 듣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조한혜정 교수님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나라 대안 교육 문제와 관련해 꽤나 유명하신 분이라고 한다.
조한 교수님은 특이하다. 흡사 알라딘 같아 보이는 복장을 입고 계신 데다가, 화장기 없는 순수한 얼굴로 학생들을 맞아주신다. 보통 교수님을 대할 때 느끼게 되는 권위라든가 거리감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출석을 부르는 일은 없고, 간혹 수업 시간을 착각해서 늦게 들어 오시기도 한다. 강의실 안에서는 모두가 동그랗게 둘러 앉아 토론하며 수업하는 방식을 취한다. 수업을 하며 일방적으로 강의 내용을 전달받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제를 던져주면 모두가 자연스럽게, 알아서 이야기를 교환하는 것이다. 수업의 진행 방식은 흡사 마당극의 형식과 비슷한데, 매주 토론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 있는 분야의 연사를 모셔 놓고 강연을 들은 다음,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쪽글을 올리며 소통을 할 기회를 다시 한 번 가지게 된다.
꽤 오랫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이런 식의 수업은 처음이었다. 특히 매사에 정확하고 철저하게 일 처리를 하고자 노력하는 나로서는 학생도 아닌 교수가 예고도 없이 수업에 늦게 들어오고,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수업 커리큘럼을 바꿔가며 갑작스럽게 숙제나 질문거리를 던져준다는 사실이 무척 당혹스러웠다. 더군다나 첫 시간부터 교수님에게 찍힌 것인지, 이름을 호명당하고, 수업 시간 내내 나를 뚫어져라 관찰하는 그 분의 눈빛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덕분에 학기 초부터 삐딱한 태도로 몇 번이고 수업 진행 방식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예고 없이 (수업을) 늦게 시작하거나, 숙제 좀 내지 말아달라고 질타를 던지기도 했다. 그 수업이 가지고 있는 지나칠 정도의 자유로움이, 나에게는 영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확실히 나는 익숙하지 못한 경험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은 침착한 목소리로, 내게 여유를 가지라고 이야기 하셨다. 고기가 아니라 고기 낚는 법, 나아가 사람 낚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이것 저것 읽을만한 자료를 추천해 주시고, 수업 시간에 강연하러 온 선생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신의 방에 데려가 주시기도 했다. 같이 차를 타고 울리히 벡의 강연에 참석하러 가던 날에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잔뜩 긴장한 채 날이 서 있는 나를 향하여 이번 총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넌지시 질문을 던지기도 하셨다. 몸이 아플 때에는, 집에가서 푹 쉬기를 바란다고 이야기 하며 웃으셨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학생들 속에서, 하나 아쉬울 것 없는 교수님이라는 분이 나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먼저 다가가려고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경계심이 들 때도 있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저러는 걸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분의 그런 행동들은 낯설어하는 나를 위한 보이지 않는 배려였다는 사실을. 최소한 그 분은 가식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경쟁하기보다는 모두를 끌어 안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걱정하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문화와 사회. 도대체 너무나 광범위한 주제라서 정의조차 내리기 쉽지 않은 두 개의 카테고리를, 이 수업은 '인간'을 통해 연결하고 교과서적인 답이 아닌, 우리 모두가 토론하고 고민하여 도출한 이야기들을 대안으로 삼고자 한다. 그렇기에 이 수업은 어떠한 정해짐도 없이, 가장 자유로운 형태를 취하며 내부에서부터 자체적인 진화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조한 교수님 께서는 이 수업을 'an experimental class(실험적인 수업)'라고 지칭하셨다. 과연 실험적이다 싶을 만큼, 이 수업 안에는 다양한 국적과 영어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각자의 생각을 간직한 채 모여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수업 후반부에는 U.C Berkeley 에서 John Lie 교수님까지 특강을 하러 오실 예정이라서, 더욱 더 예측하기 힘든 복잡한 성격을 띄게 될 것 같다.
전공 수업, 그것도 영어 과목이기 때문에 느꼈던 부담감, 그리고 과제에 대한 과중한 압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몸이 너무 아펐던 며칠 전, 마침내 나는 나 스스로를 묶어 놓았던, 강박 관념에 가까운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숙제를 늦게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한한 경쟁이 대학의 창의성을 해친다고 이야기하는 나 자신이, 실은 스스로를 경쟁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기존의 제도가 만들어 낸 규칙들에게 꼼짝 없이 묶여 있으며, 생각할 시간을 말살당하고,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 할 기회들을 잃어가고 있음을 스스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숙제를 제때 해오지 못했는데도 비난받기는 커녕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아마 이 수업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조한 교수님이 의도했던 것은 숙제를 제때 내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주는 부담감과 압력으로 인하여 개인성을 말살당하고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우리 모두에 대한 경고이자 안타까움에 가까웠던 것이리라. 그렇게 나는, 숙제를 내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홀가분해 질 수도 있다는 이상한(?) 교훈을 가슴 속에 새기고, 짜증스러운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아 마감 기간에 맞춰 글을 준비하면서, 누군가를 이기고자 죽어라고 머리를 쥐어 짜내는 대신,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시집을 읽었다. 미뤄 놓은 레포트는 그 주에 예정되었던 강연을 듣고 나서야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되더라. 아마 내일쯤 사이버 강의실에 올릴 생각이다.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라서, 체제를 비난하면서도 그 체제 속에 편승하여 자신의 사상을 형성하고, 그것을 실재로서 믿어버리고자 한다. 신 자유주의에 대하여 경계하면서도 미국의 상품을 사게 되는 현실이나, 한나라당이 미우면서도 한나라당을 찍고 마는 서민들의 현실도 이런 맥락에서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저런 행동을 했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의식은 현실을 비판해도 정작 나의 실체는 현실에 발목을 묶여 나아가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만든 틀 속에 갖혀 시들어 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하여 성찰하고, 타인의 강압이 아닌 자기 스스로의 판단을 통하여 대안을 내어 놓으며 부족한 부분은 연대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 결국 정해진 결론이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그녀에게서부터 배운 가장 소중하고도 뜻깊은 교훈이었다.
이처럼, 그녀는 여러가지 면에서 나에게 새로운 시각에서 생각을 정리해 볼 기회들을 제공해 주었다. 교실 밖으로 나가 다양한 일들을 체험하고, 돌아와서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를 이루면 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생하고 있는 나에게, 학과 사무실을 찾아가서 장학금을 알아보는 방법부터, 무엇을 할 것인지, 앞으로 어떤 경력을 쌓으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조언을 해 주셨다. 정말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그녀에 대한 나의 경계심은 차츰 옅어지게 되었다. 오히려 수업 때마다 만나서 인사하고 내 사적인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됐다. 너무나 자유 분방한 방식의 수업이기에, 행여나 배움의 깊이가 얕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지금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포스트 모더니티 같이 어려운 개념들에 대해서 실생활의 경험을 들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미시적인 경험을 하였고, david harvey 의 글을 읽거나 ulrich beck 의 강연을 들으면서 현상에 대한 거시적이고도 심층적인 이론과 분석의 틀을 얻어낼 수 있었다.
교실 공동체에서의 상호 작용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점에 대하여 타인의 아이디어를 빌려오는 좋은 경험이 되기도 헀다. 특히나, 평소에 말이 없고 영어도 어눌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줄 알았던 친구에게서부터 조용하고도 힘있는 의견을 들었을 때의 느낌은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그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서, 내가 얼마나 큰 판단 착오를 범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확인해보는 기회를 주었으니.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될까. 무척 기대가 된다. 물론 나는 그녀의 사상에 100 %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수업이 편안하고 책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내게 가르쳐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그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말로만 나불대는 것이 아닌 실천, 그리고 타인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아직까지는 연대하기보다 남을 찌르고, 예리하게 지적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무척 낯설고 힘든 일이지만, 노력해 볼 수 있다는 가능성 만큼은 확실하게 얻어낸 것 같다.
그녀의 제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사회학도로서, 이 수업의 경험이 나로 하여금 한층 더 깊은 자기 성찰과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학생과 교수라는 권력 관계 속에서 그 분을 멀리하고 두려워하는 대신, 연대를 통해 편안히 짐을 내려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멘토로서 다가가기를 바란다. 언젠가 캔 커피 하나를 들고서 홀연히, 목적 없이 위당관 연구실로 찾아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한 교수님은 특이하다. 흡사 알라딘 같아 보이는 복장을 입고 계신 데다가, 화장기 없는 순수한 얼굴로 학생들을 맞아주신다. 보통 교수님을 대할 때 느끼게 되는 권위라든가 거리감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출석을 부르는 일은 없고, 간혹 수업 시간을 착각해서 늦게 들어 오시기도 한다. 강의실 안에서는 모두가 동그랗게 둘러 앉아 토론하며 수업하는 방식을 취한다. 수업을 하며 일방적으로 강의 내용을 전달받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제를 던져주면 모두가 자연스럽게, 알아서 이야기를 교환하는 것이다. 수업의 진행 방식은 흡사 마당극의 형식과 비슷한데, 매주 토론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 있는 분야의 연사를 모셔 놓고 강연을 들은 다음,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쪽글을 올리며 소통을 할 기회를 다시 한 번 가지게 된다.
꽤 오랫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이런 식의 수업은 처음이었다. 특히 매사에 정확하고 철저하게 일 처리를 하고자 노력하는 나로서는 학생도 아닌 교수가 예고도 없이 수업에 늦게 들어오고,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수업 커리큘럼을 바꿔가며 갑작스럽게 숙제나 질문거리를 던져준다는 사실이 무척 당혹스러웠다. 더군다나 첫 시간부터 교수님에게 찍힌 것인지, 이름을 호명당하고, 수업 시간 내내 나를 뚫어져라 관찰하는 그 분의 눈빛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덕분에 학기 초부터 삐딱한 태도로 몇 번이고 수업 진행 방식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예고 없이 (수업을) 늦게 시작하거나, 숙제 좀 내지 말아달라고 질타를 던지기도 했다. 그 수업이 가지고 있는 지나칠 정도의 자유로움이, 나에게는 영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확실히 나는 익숙하지 못한 경험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은 침착한 목소리로, 내게 여유를 가지라고 이야기 하셨다. 고기가 아니라 고기 낚는 법, 나아가 사람 낚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이것 저것 읽을만한 자료를 추천해 주시고, 수업 시간에 강연하러 온 선생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신의 방에 데려가 주시기도 했다. 같이 차를 타고 울리히 벡의 강연에 참석하러 가던 날에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잔뜩 긴장한 채 날이 서 있는 나를 향하여 이번 총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넌지시 질문을 던지기도 하셨다. 몸이 아플 때에는, 집에가서 푹 쉬기를 바란다고 이야기 하며 웃으셨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학생들 속에서, 하나 아쉬울 것 없는 교수님이라는 분이 나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먼저 다가가려고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경계심이 들 때도 있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저러는 걸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분의 그런 행동들은 낯설어하는 나를 위한 보이지 않는 배려였다는 사실을. 최소한 그 분은 가식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경쟁하기보다는 모두를 끌어 안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걱정하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문화와 사회. 도대체 너무나 광범위한 주제라서 정의조차 내리기 쉽지 않은 두 개의 카테고리를, 이 수업은 '인간'을 통해 연결하고 교과서적인 답이 아닌, 우리 모두가 토론하고 고민하여 도출한 이야기들을 대안으로 삼고자 한다. 그렇기에 이 수업은 어떠한 정해짐도 없이, 가장 자유로운 형태를 취하며 내부에서부터 자체적인 진화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조한 교수님 께서는 이 수업을 'an experimental class(실험적인 수업)'라고 지칭하셨다. 과연 실험적이다 싶을 만큼, 이 수업 안에는 다양한 국적과 영어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각자의 생각을 간직한 채 모여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수업 후반부에는 U.C Berkeley 에서 John Lie 교수님까지 특강을 하러 오실 예정이라서, 더욱 더 예측하기 힘든 복잡한 성격을 띄게 될 것 같다.
전공 수업, 그것도 영어 과목이기 때문에 느꼈던 부담감, 그리고 과제에 대한 과중한 압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몸이 너무 아펐던 며칠 전, 마침내 나는 나 스스로를 묶어 놓았던, 강박 관념에 가까운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숙제를 늦게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한한 경쟁이 대학의 창의성을 해친다고 이야기하는 나 자신이, 실은 스스로를 경쟁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기존의 제도가 만들어 낸 규칙들에게 꼼짝 없이 묶여 있으며, 생각할 시간을 말살당하고,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 할 기회들을 잃어가고 있음을 스스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숙제를 제때 해오지 못했는데도 비난받기는 커녕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아마 이 수업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조한 교수님이 의도했던 것은 숙제를 제때 내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주는 부담감과 압력으로 인하여 개인성을 말살당하고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우리 모두에 대한 경고이자 안타까움에 가까웠던 것이리라. 그렇게 나는, 숙제를 내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홀가분해 질 수도 있다는 이상한(?) 교훈을 가슴 속에 새기고, 짜증스러운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아 마감 기간에 맞춰 글을 준비하면서, 누군가를 이기고자 죽어라고 머리를 쥐어 짜내는 대신,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시집을 읽었다. 미뤄 놓은 레포트는 그 주에 예정되었던 강연을 듣고 나서야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되더라. 아마 내일쯤 사이버 강의실에 올릴 생각이다.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라서, 체제를 비난하면서도 그 체제 속에 편승하여 자신의 사상을 형성하고, 그것을 실재로서 믿어버리고자 한다. 신 자유주의에 대하여 경계하면서도 미국의 상품을 사게 되는 현실이나, 한나라당이 미우면서도 한나라당을 찍고 마는 서민들의 현실도 이런 맥락에서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저런 행동을 했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의식은 현실을 비판해도 정작 나의 실체는 현실에 발목을 묶여 나아가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만든 틀 속에 갖혀 시들어 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하여 성찰하고, 타인의 강압이 아닌 자기 스스로의 판단을 통하여 대안을 내어 놓으며 부족한 부분은 연대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 결국 정해진 결론이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그녀에게서부터 배운 가장 소중하고도 뜻깊은 교훈이었다.
이처럼, 그녀는 여러가지 면에서 나에게 새로운 시각에서 생각을 정리해 볼 기회들을 제공해 주었다. 교실 밖으로 나가 다양한 일들을 체험하고, 돌아와서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를 이루면 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생하고 있는 나에게, 학과 사무실을 찾아가서 장학금을 알아보는 방법부터, 무엇을 할 것인지, 앞으로 어떤 경력을 쌓으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조언을 해 주셨다. 정말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그녀에 대한 나의 경계심은 차츰 옅어지게 되었다. 오히려 수업 때마다 만나서 인사하고 내 사적인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됐다. 너무나 자유 분방한 방식의 수업이기에, 행여나 배움의 깊이가 얕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지금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포스트 모더니티 같이 어려운 개념들에 대해서 실생활의 경험을 들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미시적인 경험을 하였고, david harvey 의 글을 읽거나 ulrich beck 의 강연을 들으면서 현상에 대한 거시적이고도 심층적인 이론과 분석의 틀을 얻어낼 수 있었다.
교실 공동체에서의 상호 작용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점에 대하여 타인의 아이디어를 빌려오는 좋은 경험이 되기도 헀다. 특히나, 평소에 말이 없고 영어도 어눌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줄 알았던 친구에게서부터 조용하고도 힘있는 의견을 들었을 때의 느낌은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그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서, 내가 얼마나 큰 판단 착오를 범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확인해보는 기회를 주었으니.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될까. 무척 기대가 된다. 물론 나는 그녀의 사상에 100 %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수업이 편안하고 책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내게 가르쳐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그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말로만 나불대는 것이 아닌 실천, 그리고 타인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아직까지는 연대하기보다 남을 찌르고, 예리하게 지적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무척 낯설고 힘든 일이지만, 노력해 볼 수 있다는 가능성 만큼은 확실하게 얻어낸 것 같다.
그녀의 제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사회학도로서, 이 수업의 경험이 나로 하여금 한층 더 깊은 자기 성찰과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학생과 교수라는 권력 관계 속에서 그 분을 멀리하고 두려워하는 대신, 연대를 통해 편안히 짐을 내려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멘토로서 다가가기를 바란다. 언젠가 캔 커피 하나를 들고서 홀연히, 목적 없이 위당관 연구실로 찾아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글
피오닐 2008/04/22 00:41 # 답글
전에 <글읽기와 삶읽기>라는 책에서 조한혜정 교수님이 수업하는 방식에 대해 읽은 적이 있어요. 한번 들어보고 싶은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매력적인 수업인가 보네요.^^
호반새 2008/04/23 00:48 # 답글
글읽기와 삶읽기라, 어떤 책일지 궁금하군요. ^^ 조한 교수님은 따듯한 감성을 지니신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