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육 현실을 볼 때마다 밀려드는 답답함 주절거림

나는 좌파다. 그러나 교육에 대해서만큼은 우파와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특목고나 자사고 설립을 찬성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교육은 학생의 성취 능력 차이서 오는 수준별 분리를 원천적으로 파괴할 정도까지 평준화되어서는 안되며, 학생 개개인의 능력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일 따름이다.

교육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대립을 볼 때마다 짜증스러워지는 이유는, 양측 모두 우리나라 교육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접근하지 못하고, 탁상 공론만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 평준화를 주장하는 좌파들조차 '명문대를 나오면 (거의 자동적으로) 사회에서 유리한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전제를 깔아놓은 채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명문대를 졸업하는 것, 혹은 대학에 진학했는가 아닌가 하는 부분이 한 개인의 취업 혹은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지, 대학 입시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특히 명문대 졸업장을 따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이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지위를 얻기 어렵고, 굳이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도 학위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과연 평준화만 이뤄내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을까? 오늘도 수많은 학생들이 영문도 모른 채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아예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채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가까운 주입식 세뇌를 당하면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그들은 오늘도 밤 늦게까지 교실에 앉아 수능에 나오는 유형에 맞추어 답을 찍어내는 전략을 학습하며, 어떻게 하면 내 옆에 앉은 학생을 따돌리고 내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할까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뛰어놀고, 진지한 토론이나 독서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들은 먼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상상력과 같은 꿈 보다는 모의고사 점수 1, 2 점에 울고 웃는 생활을 반복하게 된다. 당연히, 아이들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 생각들은 학문적인 열정이 아니라 오로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하는, 목적 전도적인 학벌에 대한 숭배 의식에 가까워진다.

이러한 생각들 속에는 그들의 부모들이 가진 이기적인 욕심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대학이 서열화 되고, 그 서열이 사회적 지위로 이어지는 현실에 문제가 많다는 것,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자식만큼은 그래도 좋은 곳에 보내야 해' 라는, 이율 배반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쳐서는 아직 여물지 않은 새싹같은 아이들을 향하여 과외니 사교육이니 하는 것들을 왕창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보화된 사회에서 오히려 산업 시대의 역군들처럼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된 아이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내린다. 이들은 다시 수능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몇 등급으로 걸러진 후, 평생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지도 모르는 대학을 '브랜드'로서 낙인 받는다. 결국 그곳에 모인 아이들은 '학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브랜드에 힘입어 누군가를 누르고 '출세'하기 위하여 대학을 이용하게끔 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무엇을 하고 싶어서 대학에 왔는가, 라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는, 그런 아이들이 정상으로 취급받는 왜곡된 세상이 열린 것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대로 모든 교육 과정 자체를 평준화 해 버린다면, 정말로 공부하고 싶어서 손에 책을 쥐고, 경쟁하기 보다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기가 힘들어진다. 대학을 향한 일률적인 목표를 가지고 평준화 된 교육방식을 강요하는 '제도권'의 횡포는, 다수의 뚜렷한 목적 없이 정해진 룰에 따라 억지로 공부하는 아이들의 틈바구니 속에 제대로 된 '공부'라는 것을 해 보고 싶은 누군가를 '비정상'으로 만들거나, 학문적인 열정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과잉된 경쟁의 열기와 평준화된 환경 속에서 수업 시간에 자주 질문하고, 토론에 활발히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행위는, 속된 말로 '튀는 애'가 하는 행동으로 여겨지며 정을 맞고, 미움받는 과정을 통하여 학문적 성장은 커녕 마음에 상처만 남기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평균적인 수준보다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누군가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누군가는 아예 한 마디도 못 알아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무작적 한 교실 안에 몰아 넣고 수업을 하게 되면, 서로 수준이 맞지 않는 집단끼리 반목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수업이 도움이 되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수업이 전혀 쓸모 없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 어울리는 방법을 체득하는 과정이 아름다운 학습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대체로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어떠한 식으로든 성적에 따라 평가가 이루어지고, 그 평가가 개인을 억누르는 강압으로 작용하는 한, 다수를 차지하는 '중간층'에 속하는 아이들은 자신보다 지나치게 앞서 나가거나 지나치게 떨어지는 수준을 가진 아이들을 무시, 격리, 처벌함으로서 학교라는 억압적 체제 속에서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그들과 나를 비교함으로서 상대적인 우월감, 혹은 억눌린 욕망을 만족시킬만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종종 '이유 없는 왕따'를 만들어낸다. 현 제도권 내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성의 말살 및 '끊임없이 평균으로 수렴하는 침묵'의 과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창의성을 포기하고, 집단에 포섭되기 위해 고통을 겪어야만 했을 것인지, 우리는 평준화를 논하기 전에 평준화로 인해서, 혹은 잘못된 교육 제도 그 자체가 가진 문제점 때문에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미 잘못 만들어진 제도의 억압과 차이에서 발생하는 격리와 반목의 현상들은 시험이나 서열화를 없앤다고 해서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오직 대학만을 위한 수단으로서 학문을 강요받는 아이들이 학교와 훈육이라는 거대 담론에 저항하는 동시에 자신이 소속된 반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자기들만의 규칙과 '정해진 수준'을 창출하여 이를 벗어나는 아이들에게 극단적인 폭력과 격리를 행사한다는, 이중적인 비극이 제도권의 그늘 아래에서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사회에서 학벌과 지식이 가지는 권력적인 측면을 거세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성공'이 명문대 진학과 좋은 취직이라는 하나의 길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그러한 과정들을 국민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부추기고 있는 교육 제도,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이데올로기 그 자체부터 바뀌지 않으면 결국 변화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교육에 대한 논의의 중점은 대입 시험이나 고교 규제 자율화에 대한 것이 아닌, '필요 이상의 높은 교육을 받지 않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부분으로 수렴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역시 진심으로 학문을 하고 싶은 사람들만 진학하여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고, 자신의 역량과 학문적인 비전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대학에서의 배움은 일차적으로 지적인 역량의 강화와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의 습득, 그 자체가 되어야지 단순히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대학 자체의 경쟁령 및 학문의 전당으로서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의미를 퇴색시킬 뿐만 아니라, 진지한 학술적 논의를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도 해가 된다. 이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개인별 학문적 역량의 차이, 습득 능력의 차이가 교육의 다양화 및 대학 수준의 차이로 귀결된다면, 그것 자체를 나쁜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차이 자체를 아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다양성을 보존하고 자기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유지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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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의 교육현실 2008/04/14 02:44 #

    한국의 교육 현실을 볼 때마다 밀려드는 답답함 호반새님이 작성하신 글인데, 그동안 내가 생각해오던 바와 너무도 비슷한 점이 많고 또 나의 정리안된 생각에 비해 너무나도 잘 설명해 주셨기에 트랙백해본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학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대학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졸업 후의 생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공계의 기피현상이나 인문학의 위기는 사실 서로 다른 계열의 다른 문제가 아니라 결국엔 안정된 직장이 보장받지 못하는 즉,...... more

덧글

  • 스내치 2008/04/14 01:29 # 답글

    동감합니다. 저도 많이 생각했던 부분이네요. 댓글 적다가 너무 길어져서 나중에 트랙백으로 보낼려구요.. 더불어 이글루링크도 신고합니다.
  • 호반새 2008/04/14 01:44 # 답글

    링크신고 및 덧글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 2008/04/22 15:2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호반새 2008/04/23 02:50 # 답글

    비공개님/ 답글이 길어져 해당 블로그에 남겼습니다. 방문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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