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부탁-이 블로그의 글들을 읽기 전에

이런 류의 글을 쓸 날이 오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며칠간 노여워하고 있던 마음을 겨우 비워낸 후에 글을 쓴다. 나는 이 블로그의 관리인이며 사유와 이론들을 통해 글을 구성하고 포스트라는 형태로 여기에 내려 놓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다른 어떤 접근자들보다도 이 공간의 관리와 소통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1. 나는 이 블로그를 방문하는 불특정 다수의 생각들을 존중한다 : 내 글은 읽는 이들의 무조건적인 동의를 원하고서 쓰여진 것들이 아니다. 나는 블로그라는 공간을 반쯤 개방된 사적 공론장, 다시 말해 생각을 자유롭게 교환하고 토론하는 소통의 장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 토론은 일방적인 설득과 복종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분명 내 생각은 내 생각인 것이고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존재할 수 있음을 나는 인정하며 최대한 존중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2. 그러나 이 곳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규칙을 따라주어야 한다 :

-글의 내용에 충실하기. 최소한 글을 다 읽고 나서 전체의 요지에 부합하는 의견을 개진하거나 제시할 것. 엉뚱한 내용들을 내가 며칠이고 고민하며 사색하여 써놓은 글들에 달아대는 행위는 나에 대한 모욕이며 기만이다.

-의견 개진에 있어 일방적으로 본 블로그의 주인장을 설득하거나 개조하려고 하지 말 것. 이는 상보성의 논리에 기반한 것이다. 내가 당신을 설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설령 당신의 의견이 나와는 대척점에 있다고 하더라도 존중하려고 애쓰는 만큼 당신도 나에 대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

-명백한 정보의 오류를 담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서는 상호간 수정, 정정이 가능하다. 가령 내가 쓴 글에서 사용된 문장의 문법이 잘못되어 있다든가, 단어의 철자가 틀렸다든가 하는 문제에 대한 지적이나 출처가 잘못 표기된 문제에 대한 지적, 전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자료와 분석에 대한 지적 등은 언제나 환영한다. 단, 그만큼 내 의견에 반대하며 논지를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의견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 없이 1)논의의 대상이 된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해당 글에 제시되지도 않은 내용을 지어내어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경우, 2)제시한 자료의 출처가 잘못되었거나 논리적 인과관계가 불분명할 경우 나는 이를 지적할 것이다.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으려는 것과 특정한 가치를 내세워 상대를 일방적으로 설득하려고 드는 것은 분명 다른 일임을 부디 숙지하여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당신을 존중하는 만큼 당신도 나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이유 없는 반말이나 욕설, 일방적인 비난 등은 직접적인 의견 삭제의 원인이 된다. 글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 없는 덧글들, 그리고 광고들도 삭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나는 일방적으로 얼굴을 모르는 타자들에게 글과 말을 통해 삶을 드러내고 관찰당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지만, 역으로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 불특정 다수들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설령 정보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알아내려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때때로 공론장에서의 건전한 토론을 방해하는 요소로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토론의 내용과 상관 없는 신상 정보나 나이 등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상호간 밝히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적어도 여러 차례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며 친해지기 전까지는). 단, 타자를 사칭하는 자(가령 한 사람이 여러 아이디를 쓰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인 것처럼 연기하는 행위 등), 나와 면식조차 없으면서 스토킹을 일삼거나 일방적으로 내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제제를 가할 것이다. 또한 나는 이에 대해 응답할 의무가 없다(타자의 사칭으로 인해 피해받은 자를 구제해주는 경우 이외에는).

3. 링크와 트랙백은 언제나 환영한다. 단, 글의 내용을 출처 표기도 없이 복사&붙여넣기를 하거나 마치 자신의 창작물인 양 가져가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임을 경고한다. 굳이 트랙백과 링크에 대한 신고를 할 필요는 없다. 부담을 가지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해 준다면 감사하겠다.

4. 나와 친해지고 싶다면, 적어도 이 공간에서 만큼은 내가 정해놓은 룰에 따라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며 나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대가로 나 역시 당신에 대한 존중과 경의를 표할 것임을 약속한다. 부디 나를 화나게 하지 말아달라. 나는 당신을 미워하고 싶지 않다.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내가 바라는 바를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 같아서 오늘부로 공지해 본다. 이 글은 당분간 이 블로그를 방문할 때 보이는 포스트들(=글들) 중에 최상단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거주지 이전 실천

20 년 넘게 나를 감옥처럼 옭아 매고 있던 작은 도시, 과천으로부터 벗어나 드디어 바깥에서 살 권리를 움켜쥘 수 있게 되었다. 비교적 넓고 쾌적했던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작은 몸을 누이기조차 비좁아 보이는, 허름하고 낡은 고시원의 단칸방을 차지하고 산다는 것이 사실 낯설고, 쉽지 않을 것처럼 여겨지기는 하지만, 숨막힐 듯한 감시와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누리는 자유란 그런 물질적인 조건의 차이와는 바꿀 수 없을 만큼 위대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거주지를 옮기기까지 무려 24 년이라는 시간이 소비되었다. 내가 나 자신을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인이 되기까지 말이다. 첫 입주 예정일은 다음주 월요일로 잡혔다. 감개 무량하다. 아마도 그 날은 내 생애에 있어 제 2 의 생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밤새도록 음주가무 고고씽.

돌아오다 주절거림

수많은 망설임과 번뇌의 끝에, 울고 좌절하고 힘겨워하던 나날의 끝에, 환한 빛이 쏟아지며 가야 할 곳으로 마침내 발길을 돌린 한 청년이 보인다. 그의 눈은 심히 충혈되었고, 목소리는 숱한 날 소리치던 분노로 인하여 쉬어 버렸으며, 손끝은 거친 시간의 가시들에게 찔려 무수한 상처들만 남았지만, 여전히 심장은 살아 펄떡이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머리칼을 상쾌하게 흐트러트려 놓는다.

한 학기 내내 아주 어려운, 그러나 풀어야만 하는 과제들을 등에 짊어진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려 하는가. 무기력하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는 나, 현실과 맞서 거칠게 투쟁하고 무엇인가를 바꾸어보려고 하는 나, 이렇게 모순된 두 가지의 자아가 양립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수많은 혼란과 괴리를 어떻게 수습하고 현실을 향해 균형 있게 두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 특별히 어떤 분야에 대하여 남다를 자신감을 내비친다는 것은 역으로 그 분야에 대한 어떤 상처나 자괴감, 열등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정말로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라면 굳이 남에게 꺼내어 자랑하고 잘한다고 소리쳐 노래 부를 일 없이 그것을 생각하거나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 만으로도 스스로가 흡족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무언가를 납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집착하고 흐느낀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그것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고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이다. 마치 드라마 '하얀 거탑'의 장준혁이 완벽에 대해 비 정상적일 만큼 집착하고, 훗날 그것이 잘못된 태도였음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스스로를 어떻게든 납득시키고자 노력했던 것과 같이.

내 안에 가득 고여 있는 아픔의 근원은 슬픔이며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며 소멸하는 자신감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오만함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자신이 초라해질까봐 몸을 사리는 것, 행여 그 약함을 들킬까 두려워하는 것. 그리하여 스스로를 방치하는 것.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겁에 떠는 자신을 다름 아닌 자신의 의지로서 처절히 묵살하여 벼랑 끝까지 몰아세운 뒤 마침내 살해하고자 하는 것.

결국 지친 마음이 오래 흐느끼다 못한 끝에 격렬하게 저항하고, 스스로가 무너져 내린다. 아마도, 진정한 아픔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자가 비치지 않을 만큼 깊고 푸른 호수의 물. 질척이거나 끈적거리지 않지만, 전혀 위험할 것 없이 항상 그 자리를 고요히 흐르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서서히 정신 속에 침투하며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만든다.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조금씩 차고 들어와 발 끝에 일렁이기 시작하면서 머리 위를 덮을 때까지, 숨을 쉬지 못할 만큼 고통스레 자신을 조이며 목적을 잃고 표류하게 만들어버린다. 경탄이 흘러 나올 만큼 투명하고 아름다우나, 동시에 소름 끼칠 만큼 면밀하고 잔인하게,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암흑과도 같이.

찔끔 찔끔 삼키다 목에 걸려버린 밀가루마냥 텁텁한 느낌으로, 까슬까슬한 두려움에 몸을 떨며, 내일을 걱정하기에 앞서 지나치게 커다란 미래를 보고, 현실과 나 사이의 괴리로부터 미칠 듯한 답답함을 감지하며, 작은 몸을 이불 속에 웅크린 채 눈을 뜨고 밤을 지세우던 나날들. 이제는 안녕이라 말할 수 있었으면. 연구자로서 감정이 거세된 글들을 쓰면서, 세련되고 절제된 언어로 세상을 절단내는 만큼 나 자신도 쇠락해져 가는 순간들을 간혹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면 시간을 내어 음악을 듣고, 문학을 읽는다.

사회과학을 연구하기에 나는 아직도 나약한 인간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내 길을 걷는다. 간다. 가고 있다. 다름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모순된 나 자신을 현실 위에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위태로울 것 같은 그 걸음을, 안쓰러움을, 나 스스로가 잡아주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대로 가라 앉아 버릴 테니까….

생각보다 세상은 공평하다. 하나의 고민이 해결되면 또 다른 고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얻은 것이 있는 만큼 잃는 것도 항상 존재한다. 고통을 모르는 삶은 어쩌면 표면적으로는 행복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통 없이는 행복도 존재할 수 없다.

그냥 남의 말이나 주워 들으며 집어 삼키는 지식이란 진정으로 내 안에서 발효되지 못한 채 머리 속을 떠도는 망령처럼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그러나 모래를 씹어 삼키듯 오랜 시간에 걸쳐 고통스레 내 것으로 만들어 낸 '깨달음'이란, 애잔한 감동을 주며 마음 속에 오랫동안 남아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지식의 원천이란 '고통'인 것이다. 알고 싶음에 대한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을 이겨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의문들과 혼란들. 현실에 대한 괴로움,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괴로움.

학자는 그리 대단한 돈벌이가 되는 직업은 아니나 이러한 마음의 두려움을 하나 하나 꺼트리고 지식의 환한 등불을 켜서 자신과 세상을 치유하고자 하는 직업이다. 언제나 어둠 속을 걷는 것처럼 불안하고 지금처럼 힘겨운 시기에는 먹고 사는 일조차 버거워지는 경우가 많겠지만, 언젠가 터널의 끝에 비칠 한 줄기의 빛을 기다리며 자기 길을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내 전제는 틀렸다.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망설임이 전혀 없고, 한 치의 흔들림조차 없이 완벽한 목표가 설정되어 있어야만 무엇인가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안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이겨내고, 모순투성이일 지언정 자신을 미워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마구 나아가다 보면 부딛치는 게 삶이라는 것이며 학업이기도 한 것이다.

헤겔의 오류에 빠지지 말자. 세상 그 어디에도 완벽한 확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해서는 안된다. 특히나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저런 오류에 빠지면 자기 주장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멍청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자신을 다독이자. 약함을 내비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도리어 그래서 더 강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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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님달님